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미 대선 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한 가운데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할 다른 공화당 후보들이 속속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온갖 추문에도 트럼프의 지지율이 여전히 공고하지만, 경선까지는 아직 1년 가까이 남아 있어 다른 후보가 치고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민주당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출마를 선언하고 재선 도전에 나섰다.
지금까지 공식 출마 선언을 했거나 조만간 출마 예정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트럼프를 포함해 11명이다. 공화당 후보가 17명(5명 중도 포기)이었던 2020년 미 대선 때와 비교하면 아직 적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 10명 넘는 후보가 트럼프와 경쟁할 경우 반트럼프 진영의 표만 분산돼 결국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를 굳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잠룡’ 중에 론 디샌티스(45) 플로리다 주지사 정도를 빼면 지지율이 전부 한 자릿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50%를 넘는다.
트럼프의 압도적 우세 가운데 마이크 펜스(64) 전 부통령, 더그 버검(67) 노스다코다 주지사가 7일(현지 시각) 공화당 대선 후보 출마 선언을 한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트럼프(77)와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포함해 9명에 달한다.
독보적 선두는 트럼프다. 지난달 30일~지난 1일 ‘내셔널 리서치’의 여론조사(500명)에서 트럼프 53%, 디샌티스 21%로 격차가 32%포인트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디샌티스가 트럼프를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때때로 나왔는데, 지난 4월 트럼프가 ‘성추문 입막음’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기소되고 나서 오히려 지지층이 집결하면서 지지율이 과반으로 올라섰다.
11명 중 트럼프·디샌티스를 빼고 1%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는 5명이다. 조만간 출마할 펜스 전 부통령과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 외에, 니키 헤일리(51) 전 유엔주재대사, 팀 스콧(58) 연방상원의원, 비벡 라와스와미(38) 로이반트 사이언스 창업자다. 이 중 펜스와 헤일리가 각각 3~4% 정도 지지율이 나온 적은 있다. 펜스는 인디애나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이어 부통령까지 지내 정치와 행정 경험이 풍부하지만, 당내 인기는 떨어진다는 평가다. 인도계 여성인 헤일리 전 대사는 2010년 전미 최연소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에 당선돼 재선했고 트럼프가 중앙 정치에 발탁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출마 선언에서 “75세 이상의 정치인은 의무적으로 정신능력에 대해 검사를 하도록 할 것”이라며 고령의 바이든과 트럼프를 동시에 직격해 트럼프와 갈라섰다.
공화당 유일 흑인 상원의원인 팀 스콧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이다. 저소득층 싱글맘의 아들로 보험대리점을 했고, 스스로 “성경적 지도자”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역시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펜스와 이미지가 다소 겹친다는 평가다. 라와스와미는 바이오 및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한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정치엔 경선 1년 전쯤 여론조사 지지율이 낮았던 후보가 실제 경선이나 대선 과정에서 열세를 뒤집은 전례가 있긴 하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밀리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민주당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깜짝 돌풍을 일으키고 나서 그 기세를 이어 대선 후보 확정, 대선 승리까지 내달렸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가 크게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뒤엎고 당선돼 충격을 주었다.
다만 지금의 공화당 후보들이 오바마나 트럼프 같은 ‘돌풍’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 트럼프의 지지율이 너무 높아 군소 후보들이 전략적으로 뭉치지 않으면 승산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에선 트럼프 대항마를 만들기 위해 너무 지지율이 떨어지는 후보들이 빨리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 입장에서 문제는 지저분한 추문이 잇달아 나와 ‘사법 리스크’가 큰 트럼프의 본선 경쟁력이다. 지난달 공화당 여론조사기관 ‘퍼블릭 오피니언 스트래티지스(POS)’ 조사를 보면 디샌티스(47%)는 바이든(43%)을 근소하게 이기지만, 트럼프(44%)는 바이든(46%)에게 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로이터·입소스의 대선 가상 대결에서도 바이든 44%, 트럼프 38%로 트럼프가 6%포인트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