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실내에 머물러라. 모든 것을 미루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각별히 돌보라. 이것은 건강 비상 사태(health emergency)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
미국 최대도시 뉴욕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대기오염에 강타 당했다. 캐나다 오타와 등 남동부 400여곳 자연 산불로 인한 연기가 북서풍 바람을 타고 내려와 미 북동부를 뒤덮은 가운데, 뉴욕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6일부터 캐나다발 연기에 뒤덮인 뉴욕시의 하늘은 7일 공기질지수(AQI)가 8배 더 치솟아 392를 기록했다. 캐나다 국경 인근 뉴욕주 시러큐스는 400을 넘었다.
AQI가 300을 남으면 ‘건강에 큰 위협이 되는(hazardous)’ 수준으로 분류된다. AQI가 100만 넘어도 노약자와 기저질환자는 외출을 자제해야 하며, 한국이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할 때가 통상 170~200 정도다. 7일 뉴욕 공기는 AQI 300 초중반대로 세계 최악이라는 두바이나 인도 뉴델리보다도 나빠졌다. 바람 때문에 정작 산불이 난 토론토 도심보다도 나빠졌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는 뉴욕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대기질로, 2001년 9·11 테러로 분진에 뒤덮였을 때도 AQI가 이렇게까지 치솟지는 않았다고 한다.
7일 뉴욕에선 야외에선 바로 옆동네에서 산불이 났거나, 흡연실에 들어가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사무실과 학교, 상점 등 실내에도 매캐한 연기가 파고들어왔다. 인공눈물을 꺼내 계속 눈을 씻어내야 했고, 목이 매캐하고 폐 속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에선 야외 활동이 정지됐지만 교내에 머무르는 학생들에게 보건용 마스크를 급히 씌울 정도였다.
이날 오후 한때는 하늘이 오렌지색, 붉은색을 띤 잿빛으로 검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은 “지구 종말이 온 것 같다” “화성 같다” “무섭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날 실제 최고기온은 섭씨 25도였으나 연기에 햇빛이 완전히 가려져 체감온도는 15~17도에 머물렀다. 반팔을 입고 있다가 으슬으슬 한기가 들 정도여서 긴 겉옷을 챙겨입어야 했다.
보건당국이 외출자제령을 내리면서, 맨해튼 센트럴파크나 허드슨 강변의 조깅족들과 자전거족들은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간혹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최근 1년새 거의 보기 힘들었던 코로나 방역용 마스크 등을 쓰고 있었다. 마치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처음 뉴욕을 강타했을 때 같은 풍경이었다.
이날 출근 등 외출할 일이 있는 이들이 모두 자가용을 끌고 나온데다, 가시거리가 수백m로 짧아져 교통사고가 속출하며 뉴욕 일대 곳곳서 종일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뉴욕 시내 라과디아 공항과 뉴저지 뉴어크 공항의 항공편 운항도 일시 중단되고, 뉴욕과 뉴저지 일대에서 항공편 지연이 속출했다. 심지어 종일 통신과 전파가 불안하고, 뉴욕 일대에 정전 지역이 속출했는데, 공기가 너무 안 좋으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뉴욕시 도서관 등 관공서들도 이날 오후 3시쯤 서둘러 문닫았고, 동물원도 문을 닫고 동물들을 실내로 대피시켰다. 브로드웨이 일부 공연은 배우들이 출근을 못해 취소됐고, 뉴욕 양키스 야구 경기도 무기 연기됐다. 이달 말 선거를 치르는 뉴욕시의회 각 정당별 선거운동도 잠정 중단됐다.
뉴요커들은 “한국이 중국발 황사가 심하다는데 이런 거냐”고 물었다. 한인 교민 사이에선 “미국 이민 온지 40년 됐는데 이런 하늘은 처음 본다. 한국산 공기청정기 사야할 판” “한국 공기가 나빠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이민 왔는데 (기후변화로 이런 게 뉴노멀 된다면)역이민 가고 싶다”는 말도 나왔다.
뉴욕시 보건당국 책임자는 “이것이 바로 글로벌 기후변화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수천 마일 떨어진 외국에서 극심한 고온 건조 현상으로 산불의 강도와 빈도가 매년 악화하고,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나라 인구 수천만명이 고통받는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뉴욕에선 최근 수년간 미 서부나 남부 같은 극심한 가뭄이나 홍수, 허리케인은 겪은 적이 없다. 뉴욕시는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해안가 방파제를 올리는 작업을 수년째 해왔지만, 이처럼 직접적으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