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지펀드 대부이자 진보 진영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92)가 셋째 아들 앨릭스 소로스(37)를 공식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아들 앨릭스는 기업·자선단체 경영권뿐만 아니라, 2024년 미 대선 등에서 진보적 정치 의제를 아버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WSJ에 따르면 소로스는 250억달러(약 32조2875억원) 규모의 사업을 앨릭스에게 대거 넘기고 있다. 앨릭스는 지난해 12월 소로스가 세운 미 최대 규모 비영리 자선단체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의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OSF는 소로스의 재산을 대부분 투입하는 핵심 기관으로, 매년 15억달러(약 1조9377억원)를 각국 인권·민주주의를 신장하는 단체나 대학 등에 지원한다.
앨릭스는 소로스가 설립한 민주당 정치인·법조인 후원용 특별정치활동위원회(Super PAC) 위원장 자리도 맡고 있다. 이 소로스 수퍼팩은 연간 1억2500만달러(약 1614억원)가 배정된다. 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 등도 앨릭스가 최근 백악관에만 최소 14회 들어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등을 만났으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각국 진보 지도자들도 잇따라 만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앨릭스는 소로스가 세 번의 결혼에서 얻은 다섯 자녀 중 셋째 아들이다. 당초 소로스는 “자식이 아닌 가장 적합한 인물에게 재단을 물려주겠다”고 했으나, 차남 조너선 소로스(52)가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조너선이 아버지와 스타일이 달라 멀어지자, 10년 전쯤부터 그 빈자리를 조너선의 이복동생인 앨릭스가 채웠다. 앨릭스는 UC버클리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위 논문은 독일 철학자 하이네와 니체의 정치철학에 관한 것이었다. 뉴욕의 ‘파티보이’로 유명했던 앨릭스는 나이가 들며 역사·철학·정치를 주제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부쩍 가까워졌고, 재단 업무에 적극 나서면서 ‘왕위’를 꿰찼다고 한다.
앨릭스는 후계자로 공식화된 뒤 처음으로 WSJ와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중도좌파 성향’이라면서 “우리 부자는 사고 방식이 비슷하지만, 내가 아버지보다 좀더 정치적이다. 그리고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달리) 미 국내 정치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미 정치권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낙태권, 투표권, 성평등 등으로 활동 목표를 확대하고, 라틴계 유권자들의 민주당 지지율을 높이고 흑인 투표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재도전 전망에 대해 우려한다”면서 “내년 대선에 진보 진영에 상당한 규모의 금전적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 태생의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로,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해 10억달러의 차익을 남겨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몰락 후 주로 동유럽 국가의 자유민주주의 건립에 막대한 자금을 댔다. 2000년대부턴 미국 대선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큰손 역할을 했으며 진보 성향 법관·검사 선거와 진보 대학 연구자금, 흑인 민권운동과 성소수자 단체 등에도 대규모 후원을 해왔다. 이 때문에 유럽·중동 각국과 미 극우 보수 진영에선 소로스를 진보 의제 뒤에 숨은 ‘비밀 정부(deep state)’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보수 진영이나 특정 국가와 인종을 궤멸시키려 하는 ‘악마’라는 음모론도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