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작년 신종 코로나 팬데믹 긴급조치 중 하나로 시행했던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결국 미 연방대법원에서 무효화됐다. 29일(현지 시각) 대법원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을 미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시행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작년 11월 중간 선거를 노리고 4000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붓는 정책을 밀어붙여 ‘매표 정책’이란 논란을 야기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 이로써 물거품이 됐다.

뉴욕타임스 등은 “대출자들에게 산더미 같은 빚 아래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맹세했던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엄청난 좌절이자 정치적 타격”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은 작년 6월 대법원이 임신 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해 미 전역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만큼 정치적 여파가 클 전망이다.

30일(현지 시각) 미국의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탕감은 합법'이라는 팻말을 들고 미 워싱턴DC 대법원 청사에서 시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때 ‘1인당 1만달러’ 연방 정부 학자금 대출 탕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공약은 ‘고등교육까지 받은 계층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것’이란 비판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중도 성향 바이든의 약한 고리인 ‘2030′ 유권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이 공약 등을 포함해 젊은 층 유권자들을 공약한 정책으로 ‘고학력 젊은 층’의 바이든 지지 현상이 뚜렷했다.

바이든은 대통령 당선 후에도 공약 이행을 하지 않다가, 지난해 8월에서야 탕감 방안을 발표했다. 소득액 12만5000달러(약 1억6450만원) 미만 소득자의 경우, 최대 2만 달러(약 2650만 원)까지 채무를 면제하겠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행정명령 형태로 추진됐다. 4000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는 미 의회예산국(CBO) 추산이 나오자 공화당 진영에선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부가 마음대로 과도한 돈을 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9명의 대법관 중 보수 6대 진보 3의 ‘보수 우위’의 대법원도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판결은 6명의 보수 대법관이 전원 다수 의견을 냈고, 3명은 소수 의견에 섰다. 앞서 보수 성향 남부 주들을 상대로 ‘흑인에게 불리한 선거구 획정을 다시 마련하라’고 잇따라 판결하는 등 진보 쪽으로 기울었던 대법원은 대형 사안에 대해서는 기존 이념 지형대로 갈라졌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학자금 대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별도 판결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대해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전날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대학 입시 정책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데 이어 연일 보수 성향을 강화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