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전남 광양시 한 야산 자락에서 경찰이 지난 2017년 10월 생후 이틀 만에 암매장된 아기 시신을 찾고 있다. 정부의 '유령 영아' 전수조사에 따른 수사 의뢰로 이번 사건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2017년 목포 한 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한 이틀 뒤 광양에 있는 친정집 근처 야산에 아기를 암매장한 30대 친모를 긴급 체포했다. /전남경찰청 제공

한국에서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하는 ‘유령 아기’ 사건이 영아 유기·살해 같은 비극으로 잇따라 드러나는 가운데, 한국의 낙태 관련 입법 공백과 높은 양육비 부담을 근본 원인으로 꼽은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1일(현지 시각) ‘한국의 영아 살해(Infantcide)’ 제하의 기사에서 출생 통보제 도입, 영아 유기·살해죄 형량 강화 등 조치만으론 영아 살해 범죄를 억지하기 힘들 것이란 전문가들 의견을 전했다. 의료 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방정부에 의무적으로 통보하게 하는 출생 통보제 도입을 담은 법안과, 영아 유기·살해죄 형량을 크게 높이는 형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는데 해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타임은 2013~2021년 영아 살해로 기소된 한국인 86명 중 69명이 14~29세 여성으로, 경제·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임신부들이 처한 상황을 봐야 한다고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건 한국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66년 만에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으나, 국회는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 꺼려해 낙태의 구체적 허용 범위와 절차, 의료보험 적용 여부 등을 전혀 법으로 정하지 않은 채 수년째 손을 놨다.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부터 낙태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놓고도 혼란을 겪는 ‘법적 회색 지대’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낙태죄가 2019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거쳐 2021년을 기해 공식적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며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재생산 및 성에 관한 건강과 권리 포괄적 보장을 촉구했다./뉴스1

타임은 “한국 여성들은 떠도는 인터넷 정보와 주먹구구식 가격 정보에 기대 낙태를 알아보거나, 돈이 부족하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한 외제 경구용 낙태약(미프진)을 구해 먹는다. 한국에선 낙태 약이 아직 불법이기 때문”이라며 이 과정에서 좌절·실패한 여성들의 영아 살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연방 대법원이 지난해 낙태권 보장 판례를 반세기 만에 폐기하자, 낙태 찬성론자들은 ‘도저히 키울 수 없다면 태어난 생명을 방기하는 것보단 초기 낙태가 낫다’고 주장했다.

타임은 또 한국이 세계 최저 출산율을 높이려 각종 정책을 짜내고 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너무 팽배하며 저출산과 극단적 영아 살해는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한 비혼(非婚) 선호 현상 뒤에는 높은 집값과 생활비, 긴 노동시간, 비싸고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과 뿌리 깊은 성 불평등 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은 “아이를 버린 부모에게만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비극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