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백악관 입성을 꿈꾸는 후보뿐 아니라 배우자들의 일거수 일투족도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들의 이미지나 동향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대선 후보를 결정할 각 당의 전당대회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현지 언론들도 퍼스트레이디 또는 퍼스트젠틀맨 후보의 동향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함께 뛰긴 싫어 - 지난달 8일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은 멜라니아 트럼프. 그는 지난해 11월 남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한 번도 유세에 동행하지 않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공화당의 경우 부동의 1·2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아내들의 상반된 스타일이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공식 일정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 등 역대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도 수동적인 내조로 ‘그림자 영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멜라니아 트럼프(53)는 이 같은 스타일을 고수할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주 검찰(성추문 입막음)·연방 특검(국가기밀문서 유출)에 잇따라 기소됐음에도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지지자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남편이 지난해 11월 대선 도전 방침을 밝힌 이래 한 번도 유세에 동행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26일(현지 시각) “멜라니아가 남편의 유세 동행 요청을 지속적으로 거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의 별장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 달리, 멜라니아는 주로 뉴욕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트럼프 부부의 불화설까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측근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가 남편의 재선 도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친민주당 성향) 주류 언론을 불신하고 있다” 등의 발언으로 불화설을 잠재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멜라니아는 긴 침묵 끝에 지난 5월 보수 성향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선 출마와 관련해) 남편은 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느 배우자들과 달리 외부 유세는 가급적 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NYT는 “멜라니아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누리지 못했던 사생활의 보호를 원한다”며 “지금은 아들 배런(17)의 대학 진학 지원에 열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게 다 맡겨 - 미 독립기념일이던 지난 4일(현지 시각) 론 디샌티스(오른쪽) 플로리다 주지사와 아내 케이시 디샌티스가 뉴햄프셔주 메리맥 카운티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같은 멜라니아의 ‘은둔’과 달리 디샌티스의 부인 케이시 디샌티스(43)는 남편 띄우기 전면에 나섰다. 케이시는 대학 시절 승마 선수로 활약했고, 졸업 뒤에는 PGA 골프투어 프로듀서·진행자를 거쳐 플로리다 지역 TV 방송국에서 기자와 뉴스 앵커로 활동했다. 이런 이력을 살려 남편의 정치적 메시지는 물론 세세한 얼굴 표정과 옷차림 등에도 ‘깨알’ 지시를 내리며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완치 판정을 받은 그는 지난해 2월 유세에서 “남편은 내가 병과 싸울 힘이 없을 때 나를 위해 싸웠다”며 끈끈한 부부애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케이시에게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디샌티스의 비밀병기’, 남편을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의미로 셰익스피어 희곡 내용에 빗댄 ‘맥베스 부인’ 등 상반된 별칭이 붙었다. 일각에선 케이시의 활발한 내조가 디샌티스의 지지율을 깎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편집증적으로 남편을 몰아붙이는 면에서 다른 정치인 부인과 다르다”고 말했다.

조용히 뒤에서 - 최근 마이크 펜스(왼쪽) 전 부통령의 뉴햄프셔주 유세 현장에 동석한 아내 캐런 펜스가 남편보다 반 발짝쯤 뒤에 서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권력 2인자였다가 대권 후보로 나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의 아내 캐런 펜스(66)는 전통적인 ‘조용한 내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남편의 외부 행사에 항상 동행하되 스포트라이트가 온전히 후보에게만 집중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있다. 남편이 2021년 4월 심장박동조율기 이식 수술을 받은 뒤에는 더욱 꼼꼼하게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 의회 관계자는 “민주당 지지 가정에서 태어나 민주당원으로 살았던 펜스가 공화당으로 전향한 것도 부인 캐런과 만났던 무렵”이라며 “그만큼 펜스가 부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방위군 아프리카 파견 환송식에 참석한 니키 헤일리(오른쪽) 전 유엔 주재 대사가 군복 차림의 남편 마이클 헤일리와 함께 걷고 있다. /AP 연합뉴스

공화당 진영의 여성 주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의 남편인 마이클 헤일리도 주목받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주 방위군 소속 소령인 그는 지난 6월 1년으로 예정된 아프리카 복무를 위해 현지로 떠났다. 헤일리는 주 방위군 파견 환송식에 나와 “남편은 나에게 든든한 바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헤일리가 ‘믿음직한 군인의 아내’임을 부각시키며 보수적 표심을 공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따로 열심히 - 질 바이든(가운데) 여사가 미국의 유네스코 재가입 축하 행사 참석차 24일(현지 시각) 파리에 도착하고 있다. 이 방문은 퍼스트레이디 단독 일정으로 진행됐다.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선출이 확실한 민주당에서는 질 바이든 여사가 벌써 독자 유세를 다니면서 재선 준비에 들어갔다.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바이든 여사가 영작문을 가르치는 현직 대학교수라는 점을 부각하며 지적이고 현대적인 퍼스트레이디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그 덕에 바이든의 노쇠한 이미지가 상당 부분 상쇄됐다는 평가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