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두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는 수퍼 히어로 ‘다크 브랜던(Dark Brandon)’으로 묘사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를 이용해 2024년 대선 캠페인의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81세 고령인 바이든 대통령은 ‘지루하다’, ‘약해 보인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런데 항상 한 수 앞을 내다보며 악의 세력을 추적해 처단하는 만화 같은 다크 브랜던의 이미지가 이런 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현지 시각) 바이든 대통령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그가 백악관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9초짜리 동영상이 게시됐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바이든 대통령이 “나는 다크(로스팅)한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테이블 위에 머크컵을 ‘탕’ 내려 놓았다.
그런데 이 머그컵에는 눈에서 적색 레이저 빔을 내쏘는 다크 브랜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지원팀은 이 영상 아래에 ‘다크 로스팅 머그’로 이름 붙은 이 컵을 살 수 있는 선거 홍보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를 붙였다.
특히 이날 2024년 대선 맞수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 불복과 관련된 혐의로 기소돼 워싱턴DC연방법원에 출석했고, 그후 얼마 안 돼 바이든 대통령이 이 동영상을 공개했기 때문에 인터넷상의 반응은 뜨거웠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트럼프)를 구속하라! 나는 다크 브랜던에게 투표하겠다”는 식의 댓글을 달며 열광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해 놓고 이런 영상을 공개한 것은 정치적 반대자를 잡아들인 후 승리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며 들끓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붙은 ‘브랜던’이란 별명은 원래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포함한 공화당 진영에서 지어준 것이다. 2021년 11월 공화당 강세 지역인 앨라배마주에서 미국스톡자동차경주협회(NASCAR) 주최 레이싱 대회가 열렸는데, NBC 스포츠 기자가 우승자 브랜던 브라운과 인터뷰하는 동안 관중들이 “엿 먹어라, 조 바이든(F**k Joe Biden)”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이를 잘못 알아들은 기자가 관중들이 브랜던을 응원하는 “렛츠 고 브랜던”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렛츠 고 브랜던’은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는 표현이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는 다크 브랜던으로 묘사한 이미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80세의 고령으로 말주변도 없고 유약한 것 같지만, 다크 브랜던으로 변신하면 코로나19를 퇴치하고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보내며 각종 문제를 해결한다는 긍정적인 이미지였다.
이렇게 이미지가 변화하게 된 과정은 불분명하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극우층에서 악의를 담아 만든 이미지가 오히려 인기를 끌게 됐다는 설도 있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브랜던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만든 것이 유행하게 됐다는 설도 있다고 전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같은 강력한 구호를 선점하고 인터넷에서 각종 밈을 양산해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이렇다 할 유행을 만들어내지 못 했던 바이든 대통령 측은 이를 반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 자신에 대한 농담을 할 스탠드업 코메디언 로이 우드 주니어를 소개하며 “나는 당신이 어떤 농담을 하든 상관 없다. 그러나 다크 브랜던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같은 달 대선 홍보 홈페이지에서 다크 브랜던 이미지를 공식 사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된 민감한 시점에 바이든 대통령 측이 다시 다크 브랜던 이미지를 담은 동영상을 공개한 데 대해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다크 브랜든 이미지가 들어간 머그를 포함한 각종 선거 홍보 상품을 팔아 소액 기부금을 모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캠프가 기부금 모금을 위해 개설한 판매 홈페이지에 등록된 43개의 상품 중 8개만이 다크 브랜든 관련 상품인데 전체 클릭의 76%, 전체 매출의 44%가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다크 브랜던이 인쇄된 32달러(약 4만1000원)짜리 티셔츠와 22달러(약 2만8000원)짜리 머그컵이 매출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바이든 대선 캠프는 200달러(약 26만1000원) 이하를 기부하는 소액기부자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분기 바이든 캠프 측은 이런 소액기부자로부터 총 1020만 달러(약 133억원)을 모았는데, 이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가 모은 2120만 달러(약 277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바이든 캠프의 TJ 더클로 대변인은 악시오스에 “우리가 하려는 얘기는 MAGA 극단주의자, 블라디미르 푸틴, 코로나 이후의 경제 붕괴, 기후 변화, 붕괴된 교량, 저조한 우리의 풀뿌리 모금액 등 무슨 문제든 간에 (다크 브랜던이 해결할 테니) 조심하라는 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