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이 한국·일본과 각각 맺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및 ‘미일 안보조약’과 유사한 군사 협약 체결을 논의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이 같은 군사 조약은 상원에서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민주당 내에서도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NYT는 이날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과 사우디 관리들은 미국과 한·일이 맺었던 안보 조약과 유사한 군사 조약의 조건을 논의하고 있다”며 “양국은 (이 조약을)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는 인센티브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미·사우디가 유사한 안보 협정에 도달할 경우 미국과 사우디는 상대방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군사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게 된다”며 “미국이 유럽 (동맹 국가들과 맺은 안보) 조약 외에 가장 강력한 것으로 간주되는 동아시아 군사 조약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논의는 이전에 보도된 바 없다”고 했다.

무함마드 빈살만(왼쪽) 사우디 왕세자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그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동의 대표적 숙적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수립을 중재해왔다. 이는 중국의 중동 내 급격한 세력 확장에 놀란 미국의 다급함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었다. 지난 3월 중국은 극비리에 주도한 물밑 협상 끝에 사우디와 이란이 7년 동안 단절됐던 외교 관계를 복원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이 커지는 모양새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이 지난 5~6월 잇따라 사우디를 찾아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났었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을 외교적 도박”이라며 “그는 2020년 대선 캠페인에서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를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앞세울 수 있는 주요 ‘외교 성과’로 고려하고 있다.

NYT는 “(미·사우디 상호 방위 조약은) 사우디 측이 강력히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 전현직 관리들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논의 전제 조건으로 이 같은 안보 조약 체결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이어 “사우디 관리들은 (미·사우디간) 강력한 방위 협정을 통해 이란이나 다른 무장 파벌들의 잠재적인 공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상화를 하는 대신 자국이 민간 핵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줄 것을 요청한 상황인데 미국은 이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美의회 강력한 반발 불러일으킬 것”

다만 미국이 한·미, 미·일이 체결한 군사 조약과 유사한 군사 협력 방안을 사우디와 체결할 경우 미 의회의 반발에 부딪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NYT는 “민주당을 포함한 미국의 고위급 의원들은 사우디 정부와 빈 살만 왕세자를 미국의 이익이나 인권 문제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보고 있다”고 했다. 빈 살만은 절대 왕권을 막는 왕족들은 물론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도 제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시절 그를 향해 ‘살인자’라고도 했지만 집권 이후 석유 증산 등의 문제로 사우디에 협력 요청을 하면서 ‘인권 원칙’을 굽혔다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 등이 특히 인권 원칙을 굽히면서 까지 사우디와의 협력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몇 달간 백악관 관리들은 영향력있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해당 협상에 대해 비밀리에 브리핑을 했다고 NYT는 전했다. 조약이 미 상원에서 비준되려면 상원 100석 중 3분의 2인 67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NYT는 “미·사우디간 군사 협력 조약은 미국의 군사 자원과 전투 능력을 중동 지역에서 벗어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특히 중국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와도 모순된다”고도 했다. 다만 미국과 사우디는 한일에 미군을 대거 파병하는 것처럼 사우디에 미군을 대규모로 보내는 것은 논의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사우디에 2700명 미만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한편 NYT는 한미 상호방위 조약 등에 대해선 “20세기 중반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이 전 세계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 동맹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체결됐다”며 “이 조약은 미국이 한일에 군대를 주둔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한일 영토에서 양국 중 어느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이 발생할 경우 각국은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