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선이 1년 넘게 남았지만 미국은 벌써 ‘선거 모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선거가 한국의 안보와 정치·경제·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피부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격주로 뉴스레터를 연재하며 지면 제약으로 다루지 못한 대선 관련 심층 뉴스를 전달드리고, 나중에는 선거 실황도 중계합니다. 뉴스레터 구독만으로 대선과 미국 정치의 ‘플러스 알파’를 잘 정리된 형태로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두번째 시간인 오늘은 화제 몰이를 하고 있는 인도계 후보들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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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당 넘어지는 대통령… 바이든은 괜찮을까? ☞ https://www.chosun.com/RFELSABA2NERFBK4W6IV533UXM/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햄프셔주 세인트 안슬렘 대학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순다르 피차이(구글), 사티아 나델라(MS), 아르빈드 크리슈타(IBM)…. 전 세계 테크업계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최고경영자 중에는 유독 인도계가 많습니다. 영어 구사 능력과 높은 교육 수준, 백인 주류 사회와의 네트워킹 노력 등을 바탕으로 리더십까지 올랐죠. “실리콘밸리는 인도계가 장악했다”는 말은 이제 구문이 됐습니다. 그런데 정치권으로 가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미국 내 인도계는 중국계 다음으로 많고 그 숫자도 420만명(미 인구조사국)이 넘지만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들이 잘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모친이 인도 출신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됐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족한 부분(흑인·아시아계·여성)을 보완하는 ‘조연’에 그쳤죠.

하지만 이번 대선은 조금 다릅니다. 아직 1년 넘게 남은 초반부지만 유독 인도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첫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선 사업가 출신인 1985년생 비벡 라마스와미가 두각을 나타내 한동안 돌풍을 일으켰죠. 호사가들 사이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가 될 경우 유력한 ‘러닝메이트’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본인도 자신을 “21세기 최고의 대통령”이라 지칭한 라마스와미에게 “(부통령으로) 아주 괜찮을 것”이라 흡족함을 표시했고요. 다만 “기후변화가 사기”라 말하고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에 내주고 전쟁을 끝내자”라는 괴짜(?)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도 상승하고 있어 지금의 스퍼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비벡 라마스와미(왼쪽에서 세번째)가 21일(현지 시각) 오하이오주 뉴올바니의 한 제조업체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진영의 유일한 여성 후보 니키 헤일리도 양친이 인도 출신이자 시크교도 펀자브인인 인도계입니다. 1972년생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하원의원(2005~2011년)을 시작으로 주지사(2011~2017년), 주유엔대사(2017~2018년)까지 착실하게 정치 커리어를 쌓아왔죠. 우리에겐 트럼프와 같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꾸준히 세 손가락 안에는 들고요, 트럼프 정부의 일원이었지만 “대가 무르고 용기가 없다(weak in the knees)”고 직격할 정도로 배짱이 두둑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헤일리가 2차 후보 토론의 주요한 타겟이 될 것”이라 했는데요, 막상 경선이 시작되면 이런 후보들이 바람을 타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헤일리의 전략입니다. 50대 여성인 헤일리는 그 어떤 후보들보다 ‘나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있어요. 올해 2월에는 “75세 이상 정치인은 정신 감정을 하자”고 했고요, 4월에는 재선에 성공하면 86세로 퇴임하게 되는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하지만 입에 담지는 못하는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한 거죠. 우리 편이라고 봐주는 법도 없어요. 이달 초 80이 넘은 자기 당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얼음’이 되자 재차 고령자 정신 감정을 공론화하고 나섭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헤일리는 요즘 ‘한 놈만 팬다’는 자세로 한 사람만 저격하고 있습니다. 바로 같은 인도계인 해리스 부통령입니다.

헤일리는 최근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번 대선은 나와 해리스와의 싸움”이라고 했어요. 80이 넘은 바이든은 제끼고 이번 대선을 ‘여성 대 여성’ ‘인도계 대 인도계’ 같은 프레임으로 가져가겠다는 거죠. 헤일리가 72년생, 해리스가 64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50대이기도 합니다. 바이든이 아무리 고령이라 하더라도 그의 경륜이 광범위한 유권자에 어필하는 반면 해리스는 상대적으로 비호감도가 높고 재임 중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점도 고려한 겁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를 주요 타겟으로 삼으려는 헤일리의 리드를 다른 후보들도 따라가기 시작했다”며 “헤일리가 원하던 판을 찾았다(found the soil she wants)”고 했어요. ‘해리스와의 경쟁’ 프레임이 작동하는 강도에 비례해 공화당 후보 중 유일한 여성이고 50대인 헤일리의 강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될 가능성이 큽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백악관 로드가든에서 열린 행사에서 웃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 해리스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현직 부통령 신분이라 그런지 아직은 헤일리의 공세에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팻 머레이 민주당 상원의원은 언론에 헤일리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점을 꼬집으며 “공화당 내 경쟁자들이나 신경쓰라”고 했고요. 하지만 해리스가 처해있는 상황도 녹록지 않습니다. 4년 전에는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아프리카계·아시아계라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어요. 그저 바이든 옆에 서서 그를 빛나게 하는 조연 역할만 해도 충분했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바이든이 고령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유권자들은 해리스의 수권(受權)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유력 언론들의 오피니언면을 보면 ‘해리스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 ‘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지난 4년 동안 어떤 족적을 남겼나’를 놓고 열띤 지상(紙上) 토론을 벌이고 있어요. ‘후보 교체론’ 역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진보 진영 안팎에서 언제라도 불이 붙을 수 있는 주제고요. 해리스도 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 됐습니다.

인도계 미국인의 권익단체인 ‘인디안 아메리칸 임팩트’는 최근 WP에 “우리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제대로 대표된 적이 없는데 어떤 의미에선 놀랍고 환상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인도계 대 인도계’가 거론될 정도가 됐으니 아직은 판타지라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인도 언론들도 라마스와미·헤일리 같은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두며 대선 실황을 중계하고 있습니다. 헤일리는 트럼프라는 ‘거인’의 그림자 아래서 우뚝 솟아오를 수 있을까요? 해리스는 자신에 대한 각계 우려를 극복하고 마침내 ‘주연’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인도계 집안싸움, 이번 대선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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