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을 1년 앞두고 승부가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6개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서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인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부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고령(高齡) 논란 및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금리 등 경제 이슈로 인해 ‘전통적 지지층’으로 여겨왔던 청년 층 및 유색 인종 그룹에서도 지지율을 상당히 많이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내년에도 이 같은 여론조사가 나온다면 트럼프는 백악관 입성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총 538명 중 과반)을 훨씬 웃도는 300명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선 핵심 경합주에서 5:1 패배
NYT가 시에나대와 함께 지난달 22일부터 11월 3일까지 6개 주(네바다·조지아·애리조나·미시건·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주) 3662명의 등록 유권자를 대상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양자 대결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고 질문했더니 48%의 유권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한 유권자는 44%였다.
지역별로는 트럼프가 네바다·조지아·애리조나·미시건·펜실베이니아 등 5개 주에서 바이든을 따돌렸는데, 그 격차가 많게는 9%p 까지 차이가 났다. 이 곳들은 내년 대선은 물론 상·하원 선거에서도 다수당을 결정 지을 수 있는 핵심 경합 지역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위스콘신에서만 트럼프를 47%대 45%로 겨우 앞섰다.
역시 고령 문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 81세가 되는 바이든에 대해 유권자 71%는 그가 유능한(effective) 대통령이 되기에 ‘너무 늙었다’고 답했다. 유권자 62%는 바이든에게 ‘정신적인 예리함’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77세인 트럼프 지지자의 19%만 트럼프가 너무 늙었다고 답했고, 전체 유권자의 39%가 그가 늙었다고 했다.
◇민주당 ‘열성 지지층’ 흑인·히스패닉 및 2030 등 돌려
바이든이 핵심 경합주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는 건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몰표를 줬던 히스패닉·흑인 그룹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이 다양한 지역일 수록 민주당 주자가 유리하다는 기존 정치 구도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NYT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을 선출했던 다인종 연합(의 충성도)이 얼마나 닳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압도적인 차이로 바이든을 지지했던 이들 그룹의 3분의 2는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흑인 그룹의 57%가, 히스패닉의 58%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민주당과 바이든 후보가 전통적 우군으로 여겼던 흑인 유권자들 중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비율은 22%까지 올라갔다. NYT는 “이는 현대 미국 정치판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이라고 했다. 특히 바이든이 유일하게 트럼프를 이긴 위스콘신은 6개 주 중 가장 백인 비중이 높은 곳이다. NYT는 “인종간 지지 성향의 놀라운 재조정(realignment)”라며 “경합주의 인종 비중이 다양할수록 바이든은 뒤쳐졌다”고 했다.
이와 함께 30세 미만 젊은 유권자들 또한 지지율이 급락했다. 18~29세 유권자들 중 바이든에게 투표하겠다는 비율은 47%로 트럼프라고 응답한 비율(46%)과 불과 1%p 차이였다.
◇결국은 ‘경제’...낙태·민주주의 보다 더 시급한 이슈
바이든을 지지했던 전통 지지층의 민심 이반 현상은 결국 ‘경제’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번 조사에서 남성·여성 및 대학 졸업 여부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모든 계층에서 ‘바이든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 당시 경제 정책이 훨씬 자신에게 유리했다는 것이다. 59%가 경제 문제에서 바이든보다 트럼프를 더 신뢰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다른 인종·외교·정치 등 이슈들과 비교했을 때 두 후보간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문제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국을 순회하고, 수백만 달러의 광고비를 써가며 자신의 경제 정책 슬로건인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를 알리려고 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인식은 ‘경제 상황이 안좋다’는 것이다.
특히 2020년 대선때 바이든을 지지했던 2030(18~29세) 세대는 인플레 장기화로 인한 고금리로 인해 경제 상황에 특히 더 불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집을 구해야 하는) 이들 세대들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2030중 내년 대선에서 경제가 가장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62%로 다른 연령대와 비교할 때 가장 높았다.
조지아주에서 주류 포장 일을 하는 자메리 헨리(25)는 NYT 인터뷰에서 “사실 바이든에 대한 기대가 컸다. 트럼프보다 나쁠 수는 없었다”라면서도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인플레이션 문제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최근에는 이스라엘 전쟁 등이 문제다. 또 우리 국경이 전혀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지난 대선때 바이든에게 투표했지만 2024년에는 다시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네바다주 리노의 패트리샤 플로레스(39)는 “그가 우리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특히 민주당이 선거 국면에서 강점을 가질 것으로 예측했던 낙태나 민주주의 문제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 문제에서 바이든을 신뢰한다는 비율은 49%로 트럼프(40%)와 9%p 차이였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도 바이든은 48%로 트럼프(45%)와 큰 차이가 없었다.
◇트럼프 4번 기소에도 끄떡없어, 상황 반전될까
NYT는 “이번 설문조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4번에 걸쳐 기소돼 2024년에 줄줄이 재판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을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11월 중간 선거때도 지지율이 지금처럼 낮았었지만 낙태 및 민주주의 위협 등을 강조해 ‘레드웨이브’(공화당 압승)을 막아냈었다. NYT는 “바이든은 아직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1년의 시간이 있다. 유권자들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경제 지표는 상승하고 있다”며 “바이든과 참모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취약점을 매꾸려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