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은 미국에서 꺼져라!”
15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국 대표단이 머무르고 있는 세인트 레지스 호텔 앞에 무리를 지은 반중 시위대는 이 같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중국은 인민의 것”, “중국 해방(Free China)”과 같은 구호도 들렸다. 한자로 민주(民主)라고 쓰여진 파란 모자를 쓴 시위대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흑백 사진에 ‘X’ 표시를 하고 ‘악취는 만년 간다(遺臭萬年)’는 문구를 써넣은 피켓을 흔들었다.
◇친중·반중으로 두쪽난 샌프란시스코
이날 APEC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가운데, 행사를 주최하는 샌프란시스코가 ‘친중’, ‘반중’으로 두쪽이 됐다. 시 주석의 방미를 항의하는 시위대는 시 주석을 희화화하는 ‘위니 더 푸’ 인형을 내세우고, ‘CCP(중국 공산당) 바이러스’라고 쓰여진 흰 천을 흔들었다. ‘프리 티벳(티벳 해방’, ‘프리 위구르(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해방)’과 같은 스티커를 옷에 붙이기도 했다. 시위대 관계자는 “우리는 결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 대화에 나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시 주석이 미국을 떠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같은 거리에는 시 주석의 방미를 환영하는 친중 인파도 밀집했다. 시 주석의 방미를 반기는 ‘환영단’인 것이다. 호텔 앞 거리 양옆에 세워진 펜스 위로 중국 오성홍기와 ‘시 주석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열렬하게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빨간 모자를 쓴 환영단은 확성기로 애국 가요인 ‘조국을 노래하다(歌唱祖國)’를 틀며 양손으로 국기를 흔들었다. 환영단에 참석한 중국계 버클리대 학생은 “대학의 중국인 학생회에서 시 주석 환영 행사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나왔다”고 했다.
앞서 중국 대표단은 극심한 반중 시위가 열릴 것을 경계하며 현지 중국인 사회에서 우호적인 인파를 동원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 환영단에는 실리콘밸리 지역에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 뿐 아니라, ‘솔트레이크 중국인회’, ‘북가주 복건성 상인회’와 같은 다양한 중국계 단체의 이름들이 보였다.
친중·반중 인파는 길이 약 300m, 폭 20m의 거리에서 대치했다. 그러다 보니 양측의 언성이 높아지며 현장의 경찰들이 싸움을 말리는 사태도 벌어졌다. 친중 환영단의 한 여성이 “저들(시위대)이 나의 목을 조르고 배를 걷어찼다”고 소리치자, 시위대에서는 그를 “시민인 척 여론을 조장하는 공산당”이라 맞받아쳤다. 양측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경찰들은 인파를 밀어내면서 “말은 해도 좋지만 뒤로 물러나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공항 수준 보안 검색에…시민 불편 토로
한편 행사장 근처 보안 수위가 높아지며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은 극심한 불편을 토로하기도 했다. 행사장 근처 슈퍼마켓인 ‘타깃’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항 수준의 보안 검색대를 거쳐야만 했고, 검색대 옆 쓰레기통엔 반입하지 못한 물병이 가득 쌓였다. 행사장을 에워싼 철조망 때문에 평소 5분이면 가는 거리도 20분 넘게 우회해서 가야해 짜증을 내는 모습들도 눈에 띄였다.
시끄러운 샌프란시스코 도심과 달리, 미중 정상 회담이 열린 파이롤리 정원은 조용한 모습이었다. 이날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0㎞가량 떨어져 있는 파이롤리 정원은 입구에서 5km 떨어진 고속도로 진입구부터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샌프란시스코 주민은 “오늘 오전에 바이든이 헬리콥터를 타고 파이롤리로 가는 장면을 보았다”며 “오전 9시 30분쯤 이 앞에서도 친중·반중 시위가 있었는데 행사장과 너무 멀리 떨어진 탓에 빠르게 철수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