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발표된 뉴햄프셔주 공화당 유권자 여론 조사 결과에서, 1위는 도널드 J 트럼프 전 대통령(42%)이었다. 뉴햄프셔주는 내년 1월23일, 아이오와주 당원대회(caucusㆍ1월15일)에 이어 두 번째 경선인 예비선거(primary)를 치르는 주로, 경선 초반의 흐름은 공화당 전체의 여론 형성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친다.

사실 트럼프 1위는 뉴스가 아니다. 그의 공화당 내 지지 기반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16일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가중 평균한 그의 당 내 대선후보 지지율은 59.1%. 당연히 트럼프는 지금까지 세 차례 열린 공화당 후보 토론회에 굳이 참석할 이유도 느끼지 않았다.

이번 CNN 방송ㆍ뉴햄프셔대 조사의 ‘뉴스’는 공화당의 경쟁 후보 중에서 유일한 여성인 니키 헤일리(Nikki Haley)의 도약이었다. 트럼프의 압도적 선두 속에서, 헤일리는 기타 후보군(群)에서 유일하게 9월 조사 때보다 8% 포인트 상승하며 20%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 6일 발표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헤일리는 내년 미 대선 결과를 결정지을 6개 경합 주에서 모두 바이든을 이겼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 칼리지가 실시한 이 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5개 주에서 이기고 위스콘신 주에서 뒤졌다. 그런데 헤일리는 위스콘신에서도 13% 포인트 차로 바이든을 이겼다. 지난 8일에 열린 공화당 경선 후보 5명의 3차 토론회(트럼프 불참) 승자도 헤일리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6일 “전통적으로 공화당에 정치 기부금을 냈던 월가의 큰손(megadonors)들이, 헤일리의 적극적인 외교 정책과 온건한 국내 정책, 당선 가능성에 주목해 반(反)트럼프 공화당 후보로 헤일리를 환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적극적인 군사ㆍ외교적 해외 개입 옹호

인도계인 헤일리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엔 대사로 발탁됐지만, 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해외 개입을 주창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원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의 딕 체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이 주축이 됐던 ‘네오콘(neoconservatives)’ 진영에 속한다.

이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고립 정책과는 분명히 다르며, 공화당 내 국제주의자들과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헤일리는 미국의 트럼프주의자들 사이에선 지지자가 없다. 반면에, 그와 2,3위 싸움을 벌이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리틀 트럼프’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영토 분쟁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백지 수표를 주지 않겠다” “유럽 일은 유럽인에게 맡기겠다”는 발언을 했다.

또 국내 정책에서도, 헤일리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혜택의 축소를 주장하고, 낙태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완화된 견해를 보여 공화당 내 온건파 여성들의 표를 기대한다.

디샌티스는 공화당 내 큰 세력인 기독교계 우파와 함께 하며, 낙태 문제 등에 매우 강력하게 대응한다. 지난 4월 그는 플로리다에서 기존에 ‘15주 이상’으로 돼 있던 낙태 수술 불가 상한선을 ‘6주 이상’으로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5인치짜리 힐을 고수하는 이유

지난 8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매미에서 열린 제3차 공화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비벡 라마스와미는 다른 후보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는 하버드대 학부에 예일대 로스쿨을 나온 인도계 테크기업인 출신으로, 이번 경선의 최연소 출마자다.

지난 8일의 공화당 경선 후보들의 3차 토론회에서 비벡 라마스와미의 "3인치 힐" 공격에 "내 것은 5인치"라고 응수하는 니키 헤일리(왼쪽)

그는 “여러분은 이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 차세대 지도자를 원하느냐, 아니면 3인치(7.62㎝)짜리 힐을 신은 체이니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 곳에도 두 사람 있다”고 덧붙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딕 체이니는 미국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해외 개입, 기독교적 전통과 가정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국내 정책, 시장 경제 중심, 낮은 과세, 정부의 간섭 최소화 등을 내세운 신(新)보주주의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었다.

라마스와미가 겨냥한 두 사람은 헤일리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였다. 디샌티스는 유세 현장에 나타날 때 키높이 창을 깐 카우보이 장화를 신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헤일리는 바로 맞받았다. “우선 내 힐은 5인치(12.7㎝)이고, 나는 이걸 신고도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신는다”며 “둘째, 힐을 신는 이유는 패션 차원이 아니라 무기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헤일리는 앞서 한 라디오 쇼에선 “디샌티스보다 커 보이려고 힐을 신느냐”는 질문을 받고 “글쎄, 그가 그거 신고 달릴 수 있는지 보세요”라고 대꾸했다.

헤일리는 2012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시절에도 “나에게 힐은 무기다. 주 의회가 남성 위주이다 보니, 때로는 이 하이힐로 걷어차고 있을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 2월에도 “악당들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걷어찰 때에 힐이 상대를 더 아프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일리는 이날 ‘체이니’ 부분은 부인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가 조사한 3차 토론회의 승자는 헤일리였다. 디샌티스를 11% 포인트 앞섰다.

이 신문은 “힐을 신고 걷는 것은 매우 불편해, 여성이 하이힐을 오랫동안 쉽게 신고 다닐 수 있다면 하나의 파워가 된다”며 “이를 고집하는 것은 헤일리의 끈기와 집념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사실 미국 남성 정치인이 키높이 창을 신는 것은 디샌티스가 처음도 아니다. 자신의 키가 190㎝(6피트 3인치)라고 주장하는 트럼프도 키높이 창을 신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트럼프도 키높이 창을 신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0㎝는 트럼프가 지난 8월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 자진 출두했을 때 스스로 밝힌 치수이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키가 184~188㎝인 것으로 추정한다. 신장(身長)을 밝히지 않는 디샌티스는 170~175㎝로 추정된다.

◇ 획일적인 남성 후보들 복장 속에서, 치마와 힐로 자기 표현

지난 8월 공화당 경선 후보 1차 토론회에서 7명의 남성 후보는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짙은 청색 정장에 흰 셔츠, 붉은 색 타이를 맸다. 칼라에는 작은 성조기 핀을 달았다. 이건 토론회에 불참한 트럼프의 복장이기도 하다. 2차, 3차 토론회에서도 남성 후보들의 복장은 거의 같았다.

헤일리만 푸른 빛이 도는 흰색 치마 정장에서, 붉은 빛의 실크 치마 정장, 흰색 치마 정장으로 계속 바꿔 입었다.

다양한 치마 정장으로 자신을 표현한 니키 헤일리(왼쪽부터 1차,2차,3차 토론회 복장)

미국 정계에서 최고 선출직을 노리는 여성 정치인에게 바지 정장(正裝)과 낮은 구두 착용은 거의 공리(公理)에 가깝다. 남성 위주의 집단에서, 여성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성별을 둘러싼 이슈가 제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예를 들어,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민주당 경선, 2016년 당 내 경선과 미 대선에서 검은색 바지 정장만 입었다. 평소에도 색만 다양하게 바꿀 뿐, 바지만 입는다.

2020년 초 카멀라 해리스와 다른 2명의 여성 후보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에도, 모두 바지 정장이었다. 부통령이 된 해리스는 지금도 짙은 계통의 바지만 입는다.

그러나 헤일리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선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 정장과 힐을 고수한다. 뉴욕타임스는 “헤일리는 바지 정장을 입어 봤자 누구도 그의 성(性)에 대해 속지 않을테니, 차라리 남성 후보들은 자신을 차별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의상을 격전의 무기로 활용하자고 판단한 듯하다”며 “니키 헤일리는 전통적인 복장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파격적이고 급진적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가끔은 여자가 나서야 할 때가 있다”

헤일리가 치마 정장을 고집하는 것은 남성이 대통령 직에 맞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보다는, ‘가끔은 여성이 나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헤일리의 롤모델(role model)은 아이들에게 종종 엄격한 규율을 부과하는 할머니ㆍ선생님ㆍ보모 역할을 하는 여성상이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다.

1차 공화당 경선 토론회에서 남성 후보들이 서로를 공격할 때, 헤일리는 “이래서 마거릿 대처가 ‘뭔가 말하기를 원하면 남자에게 부탁하고, 일이 되기를 원하면 여자에게 부탁하라’고 말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안? 찻잔 속의 태풍?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헤일리가 공화당내 경선에서 선전(善戰)하면서, 월스트리트의 전통적인 공화당 큰손들이 헤일리를 위한 조찬ㆍ만찬 모금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고 전했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13일 헤일리 지지를 선언했다. 올해 7000만 달러(약 900억원)의 정치 기부금을 축적하고 이 돈을 투자할 트럼프 대항마를 찾는 억만장자 찰스 코크도 헤일리에 주목한다고 한다.

민주당원인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도 최근 헤일리와 수 차례 통화하면서 그의 지성과 합리성, 개방적 사고에 감동받았다며 “그는 이 나라를 한데 뭉칠 잠재력이 크다”고 평했다.

하지만, 헤일리가 궁극적으로 공화당에서 트럼프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비관적 전망이 더 세다. 많은 부유층 자산가들도 트럼프가 워낙 여론조사에서 앞서 있어서, 다른 공화당 후보를 밀기를 꺼린다.

트럼프는 헤일리가 주지사를 지냈던 사우스캐롤라이나(2월24일)를 포함해 내년 1,2월에 치러지는 모든 당내 경선의 여론조사에서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샌티스에게 2000만 달러를 기부하고도 최근 트럼프로 지지 후보를 옮겨 탄 기업인 로버트 비글로는 FT에 “감옥에 가는 것만 피할 수 있다면,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