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의 전매특허인 예측불허 돌발행동이 세계 주요국 정상과 거대 기업가들이 집결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도 악명을 떨치고 있다.
머스크는 16일(현지 시각) 연사로 나서기로 했던 APEC CEO 대담 세션을 이유 없이 펑크 냈다. 전날 X(옛 트위터)에서 반유대주의 발언을 지지하며 논란을 빚은 것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머스크는 X에서 ‘유대인들이 백인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에 ‘당신은 진실을 말했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어 미국의 대표적 유대인 권익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을 언급하며 “서구의 대다수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지만, ADL과 일부 유대인 커뮤니티에 의해 부당하게 공격받는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여론이 첨예하게 분열된 상황에, 머스크가 자기 소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유대 감정을 표출하자 파문이 확산됐다.
당초 머스크는 APEC 회의장인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16일 오후 마크 베니오프 세일스포스 CEO와 함께 ‘인공지능(AI)과 미래’라는 주제로 대담할 예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는 전날 주최 측에 ‘일정 변동’으로 대면 참석이 어렵다며 원격으로 참석하겠다고 통보했다. 머스크는 평소 재택근무의 극렬 반대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주최 측은 “모든 연사가 대면 참석에 동의했다”며 머스크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펑크 낸 빈자리는 전 국무장관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존 케리 미 정부 기후변화 특사가 채웠다.
케리는 영국 데일리메일에 “무슨 곡절인지 모르고, 그저 베니오프의 요청으로 대담에 참석한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앞서 전날인 15일 시진핑과 미국 기업인들 간의 만찬에서도 자리를 일찍 떴다. 만찬 직전의 VIP 리셉션에서 시 주석과 악수하며 대화를 잠시 나눈 뒤 곧장 퇴장했다.
이번 상황은 머스크와 유대인 진영의 고착된 갈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10월 X의 전신인 트위터를 인수한 머스크는 ‘언론 자유’를 주장하며 콘텐츠 검열 수위를 크게 완화했다. 트위터에 백인 우월주의 등 극단주의적인 게시물이 많아진 것도 그쯤부터다. 당시 ADL은 “트위터에 반유대주의 콘텐츠 신고가 급증했다”고 지적했는데, 머스크는 “ADL의 ‘반유대 프레임 씌우기’ 때문에 광고 매출이 급감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되받았다. 머스크는 또 “ADL 등 단체들의 백인 인종차별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지겹다. 멈춰 달라”는 말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머스크의 돌발 행동이 논란을 빚으며 이날 테슬라 주가는 악재가 없음에도 전날 대비 3.8% 떨어진 233.59 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장외 거래에서도 추가로 1% 하락했다. IBM은 16일 X에서의 모든 광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머스크의 언행이 논란이 된 후 미디어 감시 단체인 ‘미디어 매터스’가 X에서 IBM·애플·오러클 등 기업의 광고가 반유대주의적 콘텐츠에 노출되고 있다고 밝혔고, IBM이 즉각 X와 거리 두기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