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부인 로절린 여사가 1977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무도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미 카터(99)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가 19일(현지 시각) 향년 96세로 고향인 조지아주(州)의 작은 마을 플레인스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카터 센터가 이날 밝혔다. 지난 17일 호스피스 관리를 받기 시작한 지 이틀 만이다. 카터 센터는 지난 5월 30일 로절린 여사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공개했으며, 이날 로절린 여사가 “가족의 곁에서 평화롭게 별세했다”고 했다.

로절린 여사는 미국 역사에서 2번째로 장수한 대통령 부인으로 남게 됐다. 최장수 대통령 부인은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부인 베스 트루먼 여사로 1982년 별세 당시 97세였다. 남편인 카터 전 대통령도 지난 2월부터 다른 의학적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관리를 받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간과 뇌에 전이돼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몇 달 후 완치됐다고 밝힌 적 있다. 2019년에는 최소 3번의 낙상 사고를 당해 골절을 겪었다.

부부 사이에는 잭(76), 칩(73), 제프(71), 에이미(67) 등 3남1녀와 11명의 손주, 14명의 증손주가 있다. 손자 조시 카터(39)는 지난 8월 잡지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이 마지막 장(chapter)에 와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먼저 떠나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3살 연상이고, 당시 이미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가 지난 2018년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카터 전 대통령이 뒤에서 웃으며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1일 만 99세 생일을 기념했고, 로절린 여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1946년 결혼식을 올린 뒤 77년 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카터 부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 결혼 생활을 한 대통령 부부다. 두 번째로 긴 결혼 생활을 한 것은 73년 간 결혼 생활을 유지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부인 바버라 여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로절린 여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카터 부부는) 대단한 가족이었다.집무실을 품위 있게 만들었다”며 “그(카터 전 대통령)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내가 상원의원으로서는 처음 지지 선언을 했다”는 인연을 소개했다. 또 “오늘 카터 가족의 대변인과 통화했는데 모든 가족, 모든 자녀와 손자들이 지미 카터와 함께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부인 로절린 여사가 1978년 12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의회 초청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로이터

◊탄생부터 함께 한 77년 간의 결혼 생활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

16일 별세한 로절린 여사와 카터 전 대통령은 1549년 발행된 영국의 기도서에서 기원한 이 결혼 서약에 꼭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조지아주(州)의 작은 마을 플레인스에서 태어난 두 부부는 어린 시절, 정확하게는 로절린 여사가 신생아였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 간호사였던 카터 전 대통령의 모친이 이웃 부부의 딸이었던 로절린의 출생을 도왔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24년 10월 1일 땅콩농장주였던 제임스 얼 카터 주니어와 간호사인 베시 카터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인 플레인스는 당시 인구 600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부인 로절린 여사는 3년 후인 1927년 8월 18일 플레인스에서 윌버 스미스와 앨리 스미스의 맏딸로 태어났다. 카터가(家)와 스미스가는 이웃이었고, 간호사였던 카터 전 대통령의 모친이 출산을 도와줬다. 며칠 후 산모와 신생아를 돌봐주기 위해 스미스가를 방문하는 길에 모친은 아직 어렸던 카터 전 대통령을 데려 갔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로절린 여사를 처음 만난 순간에 대해 “우리 동네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려고 요람 안을 들여다 봤다”고 적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절린 여사가 지난 1977년 2월 18일 백악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

로절린 여사는 아직 생후 며칠 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였을 때, 이렇게 카터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이후 로절린 여사는 카터 전 대통령의 여동생인 루스 카터의 친한 친구가 됐다.

‘친구 오빠’이자 ‘여동생의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이 연인이 된 것은 카터 전 대통령이 메릴랜드주(州) 애너폴리스의 미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인 1945년의 일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45년 여름 플레인스의 본가로 돌아왔다가 우연히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걸어가는 로절린 여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화를 함께 본 뒤 첫 키스를 했고, 첫 데이트 후 카터 전 대통령은 곧 모친에게 “미래의 아내를 만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데이트를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은 1945년 겨울 카터 전 대통령은 로절린 여사에게 청혼을 했다. 18세 밖에 되지 않았던 로절린 여사는 우선 대학을 졸업하자며 청혼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46년 봄 로절린 여사가 애너폴리스를 방문했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약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카터 전 대통령이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몇 주 되지 않은 1946년 7월 7일 플레인스 메소디스트 교회에서 결혼을 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절린 여사가 1946년 7월 7일 결혼 당일 찍은 사진. 카터 전 대통령은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임관해 1953년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EPA 연합뉴스

◊정치적으로 활발했던 대통령 부인

16일(현지 시각) 카터 센터가 공개한 성명에서 카터 전 대통령은 “로절린은 내가 성취한 모든 일에서 동등한 파트너였다”면서 “필요할 때마다 내게 현명한 지침과 격려를 해줬다. 로절린이 세상에 있는 한 나는 언제나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남편이 조지아주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도록 정치적 내조를 아끼지 않았던 로절린 여사는 1977년 백악관 입성 후 ‘강철 목련'이란 별명을 얻었다. 부드러운 남부 억양으로 말해서 남부를 상징하는 꽃인 ‘목련’으로 불렸지만, 인구 600명의 시골마을 땅콩농장주의 아들인 남편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강철’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로절린 여사는 취임 첫 해 남편을 대신해서 자메이카,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7국을 순방하며 각종 현안을 협의했다. 1978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당시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하도록 카터 대통령을 설득한 사람도 로절린 여사였다. 이 회의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 조약으로 이어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란 결실을 맺었다.

로절린 여사는 또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회의 명예 의장으로 활동하며 상원 증언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내각 회의에도 자주 참석했고, 카터 전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이 국가안보회의(NSC) 일일 브리핑을 받을 때도 종종 동석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로절린 여사가 지난 2004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 컨벤션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로이터

뉴욕타임스는 이런 로절린 여사를 “정치적으로 활발했던 퍼스트 레이디”로 평가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렸다”고 했다.

로절린 여사는 과거 인터뷰에서 “역사가 나를 보고 있다. 내게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인터뷰에서 “내가 한 가장 좋은 일은 로절린과 결혼한 것이었다. 그게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 부부는 노후를 자신들이 태어난 플레인스에서 보냈다. 전직 미국 대통령으로 버지니아주(州) 알링턴의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도 있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 고향인 플레인스에 묻히고 싶다고 말한 적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암 투병을 하고, 로절린 여사가 치매 진단을 받은 후에도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손자 조시는 8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분이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신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며 “두 분은 여전히 손을 잡고 다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