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반도에 한미 군(軍) 당국이 공유하는 군사용 ‘무선 5G(5세대 이동통신)망’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19일(현지 시각) 확인됐다. 미국이 군 작전 과정에 실시간으로 정보 공유가 가능한 공동 무선망을 해외 국가와 함께 운영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해졌다. 미국은 동맹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 북한 등 적의 위협에 대응하는 동시에 대중 견제 전선(戰線)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인데, 그 첫 거점으로 한국을 선정한 것이다. 미 정부는 한국을 시작으로 앞으로 일본·호주 등 다른 인도·태평양 동맹국과도 공동 망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라고 전해졌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미 정부는 최근 한미 연합 공군기지인 경기도 평택 오산 기지에 무선 5G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하고 참여 기업 선정 및 통신망 설치 계획 수립 등을 진행 중이라고 전해졌다. 실제 구축 작업은 내년쯤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한미 공군은 지금까지 각자 자체 통신망을 운영하고 있지만, 새 통신망이 향후 구축될 경우 연합 훈련 및 유사시 작전 운용 등에 공동 무선망을 활용할 수 있다. 미 정부 소식통은 “양국 군 지휘부는 적의 움직임이나 위협에 대해 곧바로 정보를 수집·공유할 수 있어 상황 판단이 대폭 향상되리라고 기대한다”며 “또 지휘부와 전장(戰場) 간 연결도 강화돼 의사 결정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라고 했다.
미 공군의 주력 전투기들과 각종 전략 무기가 배치된 오산 기지는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가데나(嘉手納) 공군 기지와 함께 중국의 위협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오키나와와 함께 대만에 가장 근접해 있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방한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오산 기지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했다. 한미 당국은 오산 기지에서 공동 통신망 운용이 안정화될 경우 다른 미군 기지들로 확장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해졌다.
한미 간 ‘군사 5G 무선망’ 공동 구축·운용은 미국의 육해공군 및 해병대, 우주군 등 모든 군 통신을 단일 망으로 연결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겠다는 미 국방부의 ‘합동 전 영역 지휘 통제(JADC2)’ 구상이 사실상 해외 동맹국으로 확장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JADC2를 통해 미 공군의 F-35 스텔스 전투기 레이더가 감지하는 정보를 육·해군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받아 목표물을 타격 가능한데, 이를 동맹국 차원으로 확대할 길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당초 미국은 JADC2를 미국과 기밀 정보 공유 동맹을 맺은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한해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앞으로 한국과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이렇게 될 경우 유사시 한미 전군(全軍)이 수집한 군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워싱턴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는 적성 국가인 중국 등에 맞서기 위해 미군과 아울러 마음이 맞는(like-minded) 동맹국들과의 상호 운용성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한국과의 실시간 연결망 구축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큰 억제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업은 전 세계 5G 통신망 시장에서 상위권을 달리는 중국의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華爲)와 ZTE(中興)를 배제하려는 미국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2019년부터 ‘국방수권법(NDAA·국방예산법)’ 등을 통해 화웨이의 통신 장비를 조달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화웨이가 중국군과 결탁해 통신 장비에 통화 내용과 데이터를 빼낼 수 있는 백도어(인가 없이 전산망에 침투하는 경로)’를 심어놨다고 미국은 의심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2017~2021년) 당시 미 정부는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LG유플러스를 언급하면서 한국 정부에 화웨이 배제에 동참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민간이 결정할 문제”라며 미국의 대중 정책에 거리를 둬왔다. 미국 내 초당적인 반중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5G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 배제’ 정책은 2021년 초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미 외교 소식통은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와 한·미·일 등이 안보 측면에서 밀착하면서 통신망 구축 논의도 진행됐다”며 “주요 동맹인 한국과 함께 가장 높은 보안 수준을 구현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공동 무선망에는 삼성전자의 오픈랜(openRAN·개방형 무선 접속망)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알려졌다. 오픈랜은 통신 장비(하드웨어) 회사와 무관하게 다른 회사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탑재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기존에는 통신 장비 기업이 안테나, 무선 장치, 기지국 장비, 소프트웨어까지 통째로 맡아 구축해 왔다. 그러나 오픈랜 기술은 화웨이 등 중국 통신 장비를 쓰더라도 다른 회사의 보안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중국의 보안 침투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미 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업계 소식통은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도 화웨이 배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향후 삼성 등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