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현재 미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은 61.2%로 여전히 압도적이다. 최근 부각되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11.0%. 헤일리는 트럼프 보다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11.7%)와 2위를 놓고 다툰다.

21일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내년 1월 공화당 첫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 주의 애너모서 시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그러나 올 한 해 헤일리의 지지율 추이에선 다른 그림이 보인다. 1월13일 겨우 2.6%였던 헤일리 지지율은 두 자리수로 올라섰다. 심지어 지난 14~20일 아메리칸 리서치 그룹의 뉴햄프셔주 여론조사에선 트럼프를 오차 범위(4%) 내에서 33% 대 29%까지 따라붙었다는 결과도 나왔다.

헤일리의 이런 선전(善戰) 배경에는 미국 공화당의 최대 큰손인 ‘코크 네트워크’와 이 네트워크의 전국 정치 조직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ㆍAmericans For Prosperity)’의 11월 말 헤일리 지지 선언이 있었다.

세계 22위의 억만장자인 찰스 코크. 2015년 4월 모습. 코크가 이끄는 미 공화당의 최대 돈줄이자 정치조직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은 지난달 말 헤일리를 지지 후보로 천명했다./로이터 연합뉴스

코크 네트워크는 다국적 복합 기업인 코크 인더스트리(Koch Industries)를 기반으로 한 찰스 코크(88)와 데이비드 코크(2019년 8월 사망) 두 억만장자 형제가 2004년 미국의 초고액 기부자, 기업들을 규합해 세운 자유주의적(libertarian) 보수 정치단체다. 자유시장경제ㆍ저(低)세율 조세정책ㆍ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코크 인더스트리는 작년 매출이 1250억 달러(약 162조 원)로, 곡물ㆍ농업 기업 카길(Cargill)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개인 기업이다. 찰스 코크는 약 600억 달러(약 77조 원)의 재산을 보유해, 블룸버그 통신의 지난 11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22위에 올랐다.

코크 네트워크와 ‘번영을 위한 미국인’ 정치 조직은 이런 자금을 무기로, 2000년 이후 미 선거에서 공화당 승리를 주도했다. 따라서 관심은 이 코크 가문의 헤일리 지지가 과연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의 벽을 넘어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코크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무려 10억 달러 예산(약 1조3000억 원)을 갖고 트럼프의 부상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에서 압승하면서 2억5000만 달러만 집행하고 당시 대선 관련 활동을 중단했다.

◇코크의 헤일리 지지가 의미하는 것은

코크 네트워크는 11월28일 니키 헤일리를 공화당 경선 후보로 지지 선언했다. 코크가 세운 수퍼 정치행동위원회(Super PAC)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은 “트럼프의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 많은 좋은 (공화당) 후보들이 패배한 최근의 선거 환경”에서 “통치 판단과 정책 경험을 갖고 양극단으로 찢긴 나라를 벼랑 끝에서 끌어당길 검증된 지도자는 헤일리”라고 밝혔다. 또 “헤일리는 트럼프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부동층과 온건한 성향의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의 모든 주(州)에 활동 지부를 둔 AFP의 지지 표명은 헤일리에겐 말 그대로 천군만마(千軍萬馬)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헤일리는 론 디샌티스처럼 50개 주를 돌면서 가가호호 방문하고 전화 통화를 통해 지지와 투표 독려를 할 선거운동원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반면에, 론 디샌티스는 ‘네버 백 다운(Never Back Downㆍ포기하지 마)’와 같은 수퍼 정치행동위원회의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이제 코크 네트워크의 수퍼 정치행동위원회인 AFP가 경선이 벌어지는 주마다 수천만 달러를 투입해서, 헤일리 지지 운동원들을 집집마다 보내고 홍보 우편물을 발송하고 TV 광고를 내보내는 외곽 지원을 맡게 된 것이다.

정치행동위원회(PACㆍPolitical Action Committee)는 특정한 정치적 대의나 후보를 위해 자금을 모아,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낙선시키는 데 돈을 쓰고 정책 입법화를 추진하는 민간 조직이다. 이 중에서도 수퍼 팩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모금하고 지출하는 데 있어서 제한이 없는 막강한 민간 정치 조직이다.

AFP는 아직 지지 후보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 7월까지, 코크 인더스트리의 2500만 달러를 포함해서 이미 7800만 달러(약 1012억원)를 모금했다. AFP는 지난 여름과 가을, 이 돈으로 트럼프를 반대하는 정치 광고를 내고 우편물을 발송하고 미국인 600만 명을 접촉했다.

한편, AFP가 11월 말 헤일리 지지를 선언한 이래, 한 달가량 헤일리 홍보에 쓴 비용은 약 2370만 달러(약 300억 원). 지금까지 공화당 내 경선 전체에 들어간 홍보 비용이 2억 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아직은 작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10억 달러 예산을 책정했었던 코크 네트워크와 AFP의 헤일리를 위한 돈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트럼프 이전, 2000년 들어 미 연방ㆍ선거 주도

코크 형제는 뼛속까지 개인의 자유를 신봉하는 자유주의자(libertarians)들이다. 이 정치 이념을 구현하고자, 워싱턴 DC에 대표적인 자유주의 싱크탱크인 케이토(Cato) 연구소를 세웠다.

심지어 1980년 미 대선에선 데이비드 코크가 자유당(Libertarian)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 1.1.%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 그의 아버지도 1960년대 미국에서 영향력이 컸던 반공(反共)ㆍ보수주의 우파 정치 집단인 존 버치 소사이어티(John Birch Society)의 공동 설립자였다.

두 형제의 자금줄이 된 코크 인더스트리는 캔사스 주에 위치한 다국적 복합기업으로, 업종은 석유ㆍ에너지ㆍ섬유ㆍ농업ㆍ금융ㆍ목재ㆍ제지ㆍ광산ㆍ화학ㆍ아스팔트 등을 망라한다. 일반 소비자에겐 이 회사가 소유한 조지아-퍼시픽 사가 만드는 키친 타월과 화장실 휴지 브랜드 정도만 익숙하다.

코크 형제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관철시키고 지지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전략적으로 돈을 썼다. 이들은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회복지 예산을 확대하자, ‘작은 정부’를 주창하며 연간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 이상을 내는 고액 기부자 수백 명을 규합해서 ‘코크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세율을 낮추고 연방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를 줄이고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미국을 이끌어가려는 목적이었다.

그 결과, 코크 네트워크는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공화당의 티파티(Tea Party) 운동이 주축이 돼 2010년 미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데 1등 공신이 됐다. 2012년 미 대선에선 실패했지만,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데 4억 달러를 썼다. 2014년 공화당이 상원을 민주당으로부터 탈환하는 과정에서도, 코크 네트워크는 무려 4만 4000건의 전국 TV 광고에 돈을 댔다.

◇민주당 “공화당 의원들은 코크 중독” 비아냥

이 탓에, 2014년 의회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연방 상원의 민주당 대표였던 해리 리드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코크(Koch)에 중독됐다”고 비판했다. 코카콜라를 뜻하는 코크(coke)와 발음이 같은 것에 빗대, 공화당 의원들이 코크 형제의 돈에 중독됐다고 비아냥 댄 것이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민주당)은 다음 해 대선을 앞두고 “나도 코크 형제가 누굴 선택할지 정말 궁금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트럼프를 제외한, 당시 공화당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코크 네트워크의 기부자 모임에 가서 정견(政見)을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코크 형제와 초고액 기부 동조자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미 공화당과 보수주의를 움직일 수 있다고 내비친 자신감은 2010년 9월 이들이 기부자에게 보낸 정치 세미나 초청장의 머리말에서도 드러난다. 이 초청장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로 시작했다. 코크 네트워크는 기후변화 대책, 사회주의적인 건강보험 확대에도 반대한다.

◇정치 문어발 ‘콕토퍼스’ 비아냥도

하지만, 코크 형제의 비판 세력은 온갖 선거에 발을 뻗치는 코크 형제를 문어(octopus)에 빗대 ‘콕토퍼스(Kochtopus)’라고 부른다. 억만장자의 정치 영향력을 확대해, 미국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코크 형제의 미 정계 영향력을 문어에 빗대 '콕토퍼스(Kochtopus)'로 그린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2019년 삽화/이코노미스트

2016년 대선에서 코크 형제의 코를 납작하게 했던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중에 그들을 “완전한 웃음거리(a total joke)”라고 조롱했다.

코크 네트워크의 수퍼 팩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은 올해 아이오와ㆍ뉴햄프셔ㆍ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트럼프를 비난하는 TV 광고와 우편물 발송에 열을 올렸다.

미 공화당이 트럼프를 포기해야 바이든의 재집권을 막을 수 있다는, 코크 네트워크의 정치 광고물./X

AFP는 2월에 “우리는 과거의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이 나라를 위한 최선은 2025년에 새 장(章)을 열 대통령을 뽑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뉴햄프셔 주에서 “트럼프를 포기해야, 바이든을 멈출 수 있다”는 우편물을 대량으로 발송한다.

◇니키 헤일리와도 외교 정책은 불일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원하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반대했다. 또 이란의 핵무장은 군사 개입을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코크 네트워크는 최근 수 년간 반대 입장인 ‘해외 불간섭’을 위해서 수천 만 달러의 정책 광고를 했다.

그러나 에밀리 사이덜 AFP 대표는 “우리는 지지하는 후보와 모든 면에서 의견이 일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AFP는 최근 3차례의 미 대선 때보다도 더 많은 자원 봉사자를 동원해서 헤일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측, 니키 헤일리는 ‘새대가리’

그러나 트럼프 캠페인의 대변인 스티븐 청은 “AFP는 중국의 국익을 최우선하고 미국을 가장 마지막에 놓는 정치 조직으로, 친중(親中)ㆍ국경개방ㆍ글로벌주의자인 ‘새대가리(birdbrain)’ 니키 헤일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어떠한 양의 음침한 돈도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지명을 따내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