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소방관이 러시아로부터 발사된 미사일 파편에 붙은 불을 끄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5일 이 미사일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전일 미국 백악관이 북한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의 발사 및 폭발 지점을 짚으며 북·러 군사협력을 공개한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북한산 미사일의 실물도 공개한 것이다./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최근 북한으로부터 수십 발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 발사대를 제공받았고 일부는 두 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 공격에 실제 사용했다고 미국 백악관이 4일(현지 시각) 밝혔다. 북한이 그간 대남(對南) 타격용으로 개발해온 SRBM이 러시아를 통해 실전 투입되면서 북·러 간 군사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앙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날 로이터에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북한 미사일이 전투에 실제로 사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미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 등을 보내는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핵·미사일 전력 고도화에 필요한 첨단 기술 일부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해 12월 30일 러시아군이 북한 탄도미사일 중 최소 한 발을 발사했고 이는 미사일 발사 지점으로부터 460㎞ 떨어진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지역 공터에 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지난 2일 야간 공습의 일환으로 다수의 북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그(미사일 발사) 영향을 평가하는 중”이라고 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5일 “러시아는 노골적인 제노사이드(대량 학살) 전쟁의 하나로 북한에서 받은 미사일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 영토 공격에 사용했다”고 X(옛 트위터)에 적었다. 2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르키우에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이 떨어진 모습도 로이터를 통해 이날 공개됐다.

백악관이 이날 북·러 간 ‘탄도미사일 거래’ 사실을 공개한 건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 차로 접어들면서 양국 간 군사 협력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미 정부는 러시아군의 재래식 전력 강화를 경계하는 차원을 넘어, 북한 미사일이 실제 전투에 투입된 상황에 대해 특히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부 당국자는 이날 본지에 “북이 러시아를 통해 (핵 개발 및 ICBM 재진입 기술 등) 첨단 군사 기술을 제공받아 미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이날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받으려 하는 무기와 기술에 대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우려스러운 안보상 함의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백악관은 이날 발표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한 SRBM의 구체적인 제원은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SRBM 사거리는 약 550마일(900㎞) 수준이라고 했다. 또 미사일 발사 장소와 폭발 지점을 표시한 지도, 북한이 러시아에 탄도미사일을 제공하기 전에 이뤄진 미사일 시험 발사 사진을 공개했다. 로이터는 이 사진을 근거로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한 미사일은 KN-23이나 KN-25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이 ‘신형 전술유도탄’이라고 부르는 KN-23은 북한이 러시아 SRBM인 이스칸데르를 본떠 만들어 ‘북한판 이스칸데르’라고 불린다. 2018년 2월 북한군 열병식 때 공개된 이후 2019년 5월 첫 시험 발사가 이뤄졌다. KN-23은 600㎜ ‘초대형 방사포’인 KN-25와 함께 한미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로 꼽혀 왔다. 외교 소식통은 “아직 개발 단계인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실전 투입돼 북의 미사일 역량이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반도 안보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 조정관이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브리핑룸에서 열린 일일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이 최근 우크라이나 공격에 사용된 탄도 미사일과 미사일 발사대를 러시아에 공급했다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이는 중대하고 우려스러운 확대"라고 말했다./AFP 연합뉴스

미 정부는 그간 전쟁 장기화로 무기 부족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왔다. 이날 백악관 발표는 국제 사회의 대북·대러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의 북한 탄도미사일 조달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러시아가 국제적 의무를 위반한 것에 책임을 지도록 요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10일 안보리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 3국도 북·러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입에 나선 후티 반군이 지난해 10월 31일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했다가 요격된 미사일 파편에서 한글 표기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5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최근 입수한 미사일 파편 사진을 토대로 미사일 엔진 덮개로 추정되는 철제 물체에 유성 펜으로 적은 것으로 보이는 ‘1025나’라는 글씨가 보였다고 보도했다. VOA는 “한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북한이 이란에 제공한 엔진 부품이 후티 반군 측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미사일에 장착된 엔진이 과거 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이란이 개발한 터보 제트엔진과 동일하다고 VOA는 전했다.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도미사일과 발사대를 제공받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사용했다고 미 백악관이 4일(현지 시각) 밝혔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이날 브리핑에서 제시한 관련 그래픽. /백악관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