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월 15일(현지 시각)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시작으로 미국 대선의 막이 오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선거가 한국의 안보와 정치·경제·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피부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격주로 뉴스레터를 연재하며 지면 제약으로 다루지 못한 대선 관련 심층 뉴스를 전달드리고, 올해 3월부터는 미국 현지에서 선거 실황도 중계합니다. 뉴스레터 구독만으로 대선과 미국 정치의 ‘플러스 알파’를 잘 정리된 형태로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홉 번째 시간인 오늘은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난 워싱턴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지한파(知韓派), 스콧 스나이더(Scott Snyder) 차기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과 나눈 얘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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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일 미 뉴욕 법원에 출석하기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스나이더 소장은 오랜 기간 미국외교협회(CFR)에서 한국 연구를 책임지는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라이스대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CFR 이전에 아시아재단에서 근무하며 ‘한미정책센터’ 설립에 기여했는데요. 스나이더 소장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4월)과 사우디아라비아(11월)를 국빈 방문했을 때 사회자로 윤 대통령과 1대1 대담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같은해 11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의 뒤를 이어 차기 KEI 소장으로 임명됐는데요. KEI는 우리 정부가 1년에 40억원 이상 예산을 들이는 기관으로 이른바 ‘경제 안보’ 시대에 더 큰 역할이 기대되는 곳입니다. 올해 4월 임기를 시작한다는 스나이더 소장은 이직을 앞두고 책을 한 권 펴냈는데요. 제목은 ‘미한동맹: 왜 무너질 수 있고 왜 그래서는 안되는가(The United States-South Korea Alliance: Why It May Fail and Why It Must Not)’ 입니다.

올해 전 세계 최고의 빅 이벤트는 누가 뭐라 해도 11월 5일 있을 미국 대선일겁니다. 지난해 한미동맹은 70년을 맞아 여러 이벤트는 물론 한층 더 실질화된 협력을 통해 관계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경우, 거칠게 말해 많은 것을 사업가의 시각으로 재단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再選)에 성공할 경우 모든 게 모래성처럼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스나이더 소장이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 이전,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공존하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그는 이른바 ‘조국 사태’ 때 ‘조국 수호’를 외치며 서초동에 운집한 인파 사진을 보고 이렇게 느꼈다고 하네요. “양극화의 아주 명백한 증거다. 미국에 저런 시위는 없지만 우리만큼이나 정치가 양극화됐구나.”

스콧 스나이더 신임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 /뉴스1

스나이더 소장은 한미 양국에서 나날이 심화하고 있는 정치 양극화가 동맹에까지 미칠 부정적 파장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보수·진보 정권에 따라 외교 정책(특히 대북·대일 정책 등)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 진폭이 커질수록 “동맹이 관리해야 할 이슈들이 하나 둘 생겨나 관계에 부담을 준다”는 겁니다. 실제로 새로 들어선 정부가 이전 정부 정책을 완전히 뒤엎고, 정부 당국자들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그 배경을 설명하고 미국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 환경이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라 불리는 미국 우선주의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면 동맹에 잠재적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북한이나 중국 같은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는 모두가 한마디씩 거드는데 정작 동맹 내부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게 그가 가진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양자·다자(多者) 회의 등을 계기로 거의 두 달에 한번 꼴로 만나며 관계를 돈독히 했습니다. 18살이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구축한 ‘케미스트리(chemistry)’가 한미 간 많은 것들을 추동했는데요. 스나이더 소장은 “윤석열·바이든 대통령이 너무 많이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같은 사람이 오면 (동맹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한·미·일 협력을 제도화한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대해서도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바이든의 성취라 생각해 없애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불가역적(irreversible)’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오바마 정부 때 신설된 한·미·일 외교 차관 대화가 트럼프 정부에선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스나이더 소장은 “한국 정부 입장에선 동맹 프레임워크에 ‘트럼프’를 단단히 끼워 박는(embed) 게 중요하고 그가 흥미를 느낄만한 정치적 근거(political rationale)를 제시하라”고 조언합니다. “(미국의) 새로운 리더가 동맹과 협력을 안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게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동맹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지금부터 ‘알박기’를 하라는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무대에 올라 미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뉴시스

이런 맥락에서 스나이더 소장은 지난해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이를 계기로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단순히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서가 아니라 반도체·배터리·청정 기술 등 동맹의 미래상을 새롭게 제시했다는 겁니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도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어젠다들이기도 합니다. 또 “전 지구적 영역에서 한미 공통의 이해가 커지고 있는 시기에 보편적 가치를 호소하는 윤 대통령의 세계관에 주목한다”며 “한국 대통령이 잘 하지 않던 방식인데 미국인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울림이 컸다”고 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동맹은 목적이자 수단이기도 하다”며 우리가 목표로 하는 G7(7국) 가입에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유했는데요. 미 대선에서 누가 되는 우리는 다음 70년도 찬란할 한미동맹을 만들기 위해 우리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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