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열릴 뉴햄프셔 경선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트럼프로 결정 난다고 봅니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주(州) 뉴햄프셔의 공화당 경선 유세장에서 21일 오후에 만난 팀 라일리(57)씨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에서 대선 후보를 굳힌다고 확신하는 듯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미 대통령 선거는 오는 11월 열리며, 오는 23일로 예정된 뉴햄프셔의 경선(프라이머리)은 지난 15일 아이오와주에 이어 열리는 두 번째 경선이다. 원래는 약 10개월 남은 대선 레이스의 초기 민심을 확인하는 행사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날 뉴햄프셔주 곳곳의 유세장은 ‘대선 후보 트럼프’로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확신하는 지지자들의 거센 기세로 뒤덮인 분위기였다.
이날 뉴햄프셔를 뒤흔든 최대 뉴스는 한때 트럼프의 대항마로 여겨졌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사퇴였다. 디샌티스는 이날 X(옛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에서 “유권자 다수가 트럼프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명확해졌다. 트럼프는 현직인 조 바이든(현 미국 대통령)보다 우수하다”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메시지와 함께 대선 레이스를 접었다. 뚜렷한 메시지 및 선거 전략 부재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원조’ 트럼프를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공화당 경선은 압도적 우세인 트럼프를 디샌티스 및 니키 헤일리 전 주(駐)유엔 대사가 따르는 구도로 진행돼 왔다. 디샌티스 사퇴로 이제 미 경선은 트럼프와 헤일리 간 양자 대결 구도로 좁혀졌다. 아이오와 경선에선 트럼프의 득표율이 51%, 헤일리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였다. 당원만 투표 가능한 ‘코커스’ 형식으로 치러진 아이오와 경선과 달리 뉴햄프셔는 비(非)당원도 경선 참여가 가능한 ‘프라이머리’다. 아이오와와 결과가 다를 수 있다고 헤일리 측은 주장해 왔지만, 디샌티스의 사퇴로 뉴햄프셔 경선 또한 트럼프에게 더 유리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대세다. 이날 CNN이 발표한 뉴햄프셔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50%로 헤일리(39%)를 11%포인트 앞섰다. 이 조사에서 디샌티스(6%)를 지지한 뉴햄프셔 유권자의 3분의 2는 두 번째 선호 후보로 트럼프를 택했다. 뉴햄프셔주의 공화당 전략가 마이크 데너히는 디샌티스의 사퇴와 지지 선언으로 트럼프가 60%까지 득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는 이날 성명을 내고 디샌티스의 지지 선언을 “영광으로 여긴다”며 “이제 모든 공화당이 트럼프로 결집할 때”라고 했다.
트럼프는 20일부터 연이틀 뉴햄프셔의 대형 경기장과 공연장을 돌며 지지자 수천 명씩이 모인 대규모 유세를 통해 ‘세 과시’에 나섰다. 21일 오후 7시쯤 로체스터에 있는 공연장(오페라하우스)에 트럼프가 들어서자 빼곡하게 모여 있던 지지자 700명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인구 3만여 명의 한적한 소도시 로체스터의 도심은 오후 4시쯤부터 트럼프를 보기 위해 몰린 지지자들로 도로가 마비됐다. 입장 대기 줄은 경기장 밖으로 200m 넘게 늘어섰고, 도로는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자동차들로 꽉 찼다. 유세장 밖에 서 있던 지지자들은 오후 늦게 디샌티스 사퇴 소식이 나오자 함성을 지르며 “헤일리도 포기해!”라고 소리쳤다. 한 지지자는 “디샌티스는 그나마 물러갈 타이밍을 잘 잡았다. 헤일리 또한 얼른 그만둬야지, 그러지 않으면 트럼프가 용서 안 할 것”이라고 했다.
기세등등해진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헤일리에 대한 공격 수위를 더 높였다. 그가 “헤일리는 ‘RINO’(Republican In Name Only·허울만 공화당원)다. 헤일리를 지지하는 상당수가 11월 대선 때는 바이든을 찍으려는 민주당 성향”이라고 하자 곳곳에서 환호와 (헤일리를 겨냥한) 야유가 쏟아졌다.
반면 이날 오전 뉴햄프셔주 데리의 한 중학교 도서관에서 진행된 헤일리의 유세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 헤일리 캠프는 지난 일주일간 유세를 대부분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 강당 등에서 진행했다. 주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이런 ‘차분한 연출’에 대해 뉴햄프셔 정가는 온건한 ‘고학력 백인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