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11월 5일)에서 공화당 후보를 뽑는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주(州) 프라이머리(예비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다시 절반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지난 15일 첫번째 경선인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 대회)에서 51%의 득표율로 1위를 했던 트럼프는 이날도 경쟁자인 헤일리를 앞서면서 ‘대세론’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AP,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날 개표 결과 등을 토대로 한 자체 통계를 통해 트럼프가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대사를 이겼다고 전했다. 이로써 트럼프는 공화당의 새 역사를 쓰게 됐다. 아이오와주 코커스가 공화당 첫 경선으로 자리 잡은 1976년 이후 현직 대통령이 아닌 대선 후보 중 아이오와, 뉴햄프셔에서 연승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선거 다음 날인 24일 오전 0시30분(미국 시각) 기준으로 트럼프는 54.5%의 득표율을 얻어 헤일리(43.6%)를 10.9%포인트 앞서고 있다. 미 언론들은 뉴햄프셔주 압승의 기준으로 10%포인트 차 승리를 제시해왔다. NYT는 “트럼프의 승리,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에 박차를 가하다”라며 “트럼프의 이날 승리로 헤일리의 향후 진로에 대한 의문이 깊어지고 있다”고 했다. AP는 “트럼프는 뉴햄프셔 공화당원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았다”며 “경쟁자인 헤일리의 지지자들도 공화당이 사실상 그의 것이라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헤일리가 이날 사퇴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당내 경쟁은 당분간 계속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23일 뉴햄프셔주 런던데리의 한 투표소를 찾아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공화당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배정된 대의원 수는 22명으로 전체(2429명)의 0.9%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 20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사퇴로 트럼프와 헤일리간 양자 구도로 공화당 경선이 재편된 이후 처음 치러진 대결인만큼 선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오후 8시쯤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예측이 나오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는 방금 뉴햄프셔에서 승리했다. 감사하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이겼다”라고 했다.

23일 미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 선거) 당일 오후 내슈아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캠프 선거 종료 기념 행사장에서 트럼프 지지자 제프 브래들리씨가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그는 "헤일리가 하루 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이민석 특파원

이날 오후 5시 선거 종료를 기념하기 위해 트럼프 캠프가 마련한 축하 행사장은 이미 파티 분위기였다. 내슈아의 고급 호텔 내부엔 지지자들이 행사장에 들어서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이날 트럼프에게 한표를 던진 뒤 곧장 이 호텔로 왔다는 제프 브래들리(58)씨는 “결과는 안봐도 트럼프의 승리인 걸 알고 있다. 이 분위기가 결과를 말해주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헤일리는 이제 분수를 알고 대통령님(Mr. President)을 위한 길을 터줘야 한다”며 “분위기가 좋을 때 물러나야 화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초기 두 차례 경선지에서 압도적 차이로 승리하면서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본선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맞붙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미 하버드대 미국정치연구소(CAPS)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가 지난 17~18일 등록 유권자 23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48%가 트럼프라고 답했다. 바이든 지지율은 41%로 트럼프가 7%포인트 앞섰다. 바이든과 트럼프, 무소속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까지 포함한 3자 대결에선 각각 33%와 41%, 18%의 지지율을 기록해 전·현직 대통령간 격차가 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바이든은 이날 뉴햄프셔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초기 결과가 발표된 직후 성명을 내고 “이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고 했다.

트럼프 캠프도 이날 승리를 기점으로 사실상 공화당 후보로서 ‘본선 대비’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캠프 고위 관계자는 이날 CNN에 “조지아, 애리조나, 미시간주 등 2020년 대선때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패배했던 주요 경합주에서의 유세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바이든과의 본선 경쟁에서 ‘중도층’을 끌어오기 위해 선제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오는 26일 저녁 애리조나주에서 열리는 공화당 만찬 행사에 참석해 연설한다.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전 유엔 대사인 니키 헤일리가 23일(현지 시간) 뉴햄프셔주 콩코드에서 열린 시계 파티에서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가 나온 후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가 뉴햄프셔에서도 헤일리를 이기면서 당내에서 헤일리에 대한 ‘후보직 사퇴’ 압박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헤일리는 이날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되자 연설을 갖고 “트럼프의 승리를 축하한다”면서도 사퇴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경선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만큼 선거는 끝난 것과 거리가 멀다”며 “아직 나에 대한 부고 기사(obituary)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공화당 내 후보 경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헤일리 캠프는 트럼프와의 1대1구도를 유지하면서 ‘트럼프의 독주 저지’의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헤일리는 이날 “미국 정치에서 가장 최악의 비밀은 민주당이 얼마나 트럼프와 맞서길 원하는지다. 그들은 트럼프가 조 바이든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공화당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도 했다. NYT는 “마치 헤일리가 승리자 같은 연설을 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소셜미디어 글에서 “헤일리는 뉴햄프셔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기지 못했다”며 “그는 망상적(delusional)이다. 지난주 그는 3위였다”고 했다. 헤일리가 첫 경선지였던 아이오와주에서 자신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을 비꼬는 발언이었다. 이날 축하 파티 연설에서도 트럼프는 헤일리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고, 이에 헤일리 캠프는 별도 성명을 내고 “트럼프가 그렇게 좋은 상태라면 왜 그렇게 화를 내고 있는가”라며 맞받으면서 충돌을 이어갔다.

다음 격전지는 한 달 뒤인 다음 달 24일 공화당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다. 이 곳은 헤일리가 8년간 주지사를 지낸 ‘정치적 고향’이다. 만약 트럼프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도 큰 격차로 승리한다면 헤일리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후 ‘수퍼 화요일’로 불리는 3월5일 캘리포니아(대의원 169명)와 텍사스(대의원 161명) 프라이머리를 포함해 16곳에서 경선이 치러진다. 총 대의원 874명(전체의 약 36%)의 향방이 이날 결정된다.

이후 공화당은 7월 위스콘신주 밀워키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를 뽑는다. 바이든 출마가 사실상 굳어진 민주당도 형식적이지만 전국 경선을 통화 8월 후보 확정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