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처음 대선에 도전했던 2016년보다 에너지가 더 넘쳐 보였습니다. 저렇게 씩씩할 수가 없어요. 1시간 반 넘게, 물 한 모금 안 마시면서 끊임없이 저돌적·공격적인 발언을 내놓는 걸 보세요.”
김동석(66)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미국 대선(11월 5일)의 공화당 후보를 뽑기 위한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주(州) 프라이머리(예비 선거)가 열린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기세가 무섭다”고 말했다. 미 최대 한인자유권단체 KAGC를 이끄는 김 대표는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당시 어느 누구도 한인을 대변해주지 않는 현실을 목격한 뒤 미 한인을 대상으로 30년간 유권자 운동을 해왔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이오와·뉴햄프셔주 등 민주·공화당의 경선 현장 곳곳을 돌면서 선거 판세를 읽고 후보 및 캠프 주요 관계자들과 인맥을 쌓아왔다. 이번이 여섯 번째 대선 현장 방문이라는 김 대표에게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판세와 향후 전망을 물었다.
-오늘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헤일리 득표율이 43%를 기록했는데 예상보다 선전(善戰)이다. 헤일리가 계속 버티면 그를 지원하는 반(反)트럼프 세력이 희망을 갖고 자금 지원을 더 할 수 있다. 헤일리도 이를 믿고 ‘사퇴는 없다’고 한 것이다. 3월 ‘수퍼 화요일’에 경선이 열리는 16개 주 중엔 헤일리가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경합 주가 상당수 있다. 여기서 헤일리가 좋은 결과를 얻을 경우 양자 대결은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직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헤일리 후보 유세를 직접 보았다. 각 캠프 분위기가 어땠나.
“선거는 현장을 보면 안다. 특히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전일 오전 헤일리 유세장에 갔는데 ‘패배’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원 봉사자들이 의욕이 없고 후보 장소도 너무 협소했다. ‘우리 후보가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면서 걱정하는 게 눈에 보였다. 후보가 상승세면 직원들도 지지자도 의욕적이다. 헤일리는 그간 ‘무당층’이 많은 뉴햄프셔에서 온건 공화당원들의 지지를 끌어모으기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면 지지자들이 죄다 노년층이었다. 지지자들도 동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반면 트럼프 유세는 무서웠다. 8년 전 정치 신인으로 도전했을 때 유세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후보(트럼프)나 지지자들의 분노가 더 커졌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무서웠나.
“2016년 ‘트럼프 현상’에 화들짝 놀라, 트럼프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유세를 직접 봤었다. 그때의 열기가 전혀 식지 않았다. 트럼프는 70대 후반인데도 1시간 40분 동안 쉬지도 않고, 물 한 번 안 마시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했다. ‘내가 가는 길이 미국이 올바로 가는 길’이라는 트럼프 특유의 신념(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이 더 견고해졌고 관중들도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그에 반해 헤일리의 평균 연설 시간은 30분밖에 안 되고 단조로웠다. 게임이 안 된다고 느껴졌다.”
-이번 경선은 지난 선거와 어떻게 다른가.
“이번 경선의 특징은 ‘새 얼굴’이 없다는 것이다. 2008년 오바마, 2016년 트럼프와 같은 신예가 없다. 우리가 알던 익숙한 사람들이 다시 한번 끌고 가는 선거다. 그런데도 미 언론의 관심이나 보도량은 이전 선거 때와 비교할 때 결코 적지 않다. 트럼프가 과연 또다시 돌아올 것인가. ‘트럼프의 대안’을 찾는 공화당 온건파들이 헤일리를 통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결국 트럼프가 헤일리에게 압승해 본선에서 바이든과 붙게 될 것인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경선 현장을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이유는.
“초기 경선 현장을 살피면 그해 선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가 예상된다. 2008년 버락 오바마,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등 당시의 굵직한 정치 신인들이 일으키는 ‘바람’을 처음 목격한 곳도 경선 현장이었다. 다만 뉴햄프셔의 선거 결과가 대선 전체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1992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그해 대선에서 최종 승리했고, 2000년 아들 부시, 2008년 오바마,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도 경선 때 이곳에서 1위를 못 했지만 결국 당선됐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이곳에서 각자의 ‘바람’을 보여줄 수 있고, 그때 새겨진 이미지는 전국 유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초기 경선이 중요한 이유다. 개인적으론 초기 경선지 방문이 유력 후보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이오와·뉴햄프셔 선거가 끝나면 각 후보들이 승리 파티를 연다. 그곳을 찾아 캠프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되면 자산이 된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한인들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선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결국 본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가 성사되는 것 아닌가.
“상식적으로 보면 둘의 재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변수가 있다. 각 당 후보는 오는 7~8월에 열릴 전당대회에서 결정을 한다. 경선은 전당대회 후보를 뽑을 대의원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대의원들이 전당대회에서 투표를 통해 공식적으로 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재판 때문에 공화당 경선의 판세가 뒤집히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전당대회 때 대의원들 사이에 ‘트럼프가 이런 상황인데 바이든을 이길 수 있겠느냐’ ‘후보를 교체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 공화당 후보가 되기 위한 대의원 다수를 확보해 놓고도 ‘후보 교체론’ 때문에 한동안 힘들어했다. 공화당 주류 인사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반(反)트럼프 운동이 대의원으로 확산되면서 폴 라이언 당시 하원의장 등 ‘안정된 후보’로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을 잠재우느라 골치가 아팠었다. 이런 변수가 또다시 불거질지 지켜봐야 한다.”
-’파죽지세’ 트럼프의 기세를 막기 위한 조 바이든 대통령 전략은 무엇인가.(민주당은 바이든의 대선 출마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2016년 당시 트럼프 캠프를 쫓아다니면서 느꼈던 건 트럼프의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도 ‘비호감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동네 깡패’ 같았다면 힐러리는 유세장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 ‘귀족’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힐러리의 인종차별 성향, 평범한 유권자층과는 동떨어진 상류층 이미지 등이 트럼프에게 상당한 이점이 됐었다. 이번 대선에선 바이든이 고령이고 맥도 없고 무능하다는 이미지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내에서마저 ‘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는 ‘반트럼프 전선’이 경선 초반부터 있었다. 이런 움직임이 확대되면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게 표를 찍었던 느슨한 지지층이 트럼프에게 또다시 표를 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경선 초반만 보고 본선에서도 트럼프가 독주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 과정에 바이든이 트럼프 재집권의 위험성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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