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에서 ‘두 개 전쟁(우크라이나전, 이스라엘·하마스전)’ 지원 예산 법안이 국내 문제인 이민 통제 방안과 복잡하게 얽혀 의회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일 연방상원의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는 오랜 협상을 거쳐 남부 국경 통제 강화 방안과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안을 합한 1180억달러(약 156조원) 규모의 긴급 안보 예산 법안을 초당적으로 공개했지만, 이틀 만에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공화당 유력 대선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오직 멍청이 혹은 극좌파 민주당원이나 이런 끔찍한 국경 법안을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한 뒤, 공화당 의원들이 줄줄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어서다. 친(親)트럼프 인사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예산 법안이 하원에) 오는 순간 죽을 것”이라며 법안 통과 가능성이 없다고 공언했다.
Q1. 왜 국경 문제가 전쟁 지원과 얽혔나
우선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멕시코와 인접한 남부 국경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불법 이민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 국경수비대가 남부 국경에서 불법 이민자를 적발한 건수는 약 250만건으로 역사상 가장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이 봉쇄됐던 2020년의 40만건은 물론, 팬데믹 전인 2019년의 85만건과 비교해서도 3배가량으로 폭증한 수치다.
미국 국민,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트럼프는 해외 군사 지원을 선호하지 않으며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한 트럼프계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존슨 의장은 지난해 12월 “미국민은 국가 안보 문제가 우리 국경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데 동의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처리에 앞서 남부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Q2. 양당이 상원에서 제안한 법안 내용은?
하원의 친트럼프 의원들과 달리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상원의원 중에는 우크라이나 지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이 때문에 상원에서 양당이 남부 국경 통제 강화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한데 묶은 타협안을 협상할 수 있었다.
지난 4일 이들이 발표한 법안에는 남부 국경 관리 예산 200억달러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600억달러, 이스라엘 지원 예산 140억달러,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지원금 48억달러 등이 포함돼 있다. 또 국경을 넘은 이민자가 직전 일주일간 하루 평균 5000명 이상이 되거나, 어느 하루라도 8500명보다 많으면 국경을 폐쇄할 수 있게 했다. 보수 성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을 통해 “이 국경 법안은 통과시킬 만하다”며 “(이민 통제를 주장한) 공화당이 오랫동안 우선시했던 조항들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Q3. 왜 트럼프와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반대하나
표면적인 이유는 이 법안의 국경 통제 조항이 너무 약하며, 국경 법안을 따로 만들어야지 우크라이나 지원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11월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계산이 담겨 있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한다. 국경 관리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큰 약점인데, 새로운 입법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돼 버리면 대선에서 바이든을 공격할 포인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5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이 법안은 민주당에 큰 선물이고 공화당에는 죽고 싶다는 바람(Death Wish)”이라며 “민주당이 이민과 국경 문제에 대해 해온 끔찍한 일을 용서해 주고 곧바로 공화당에 떠맡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Q4.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은
대선을 앞두고 국경과 우크라이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바이든은 6일 “(트럼프는) 지난 24시간 동안 상·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을 접촉해 그들이 이 법안에 반대하도록 협박하고 강압하기만 했다고 들었다. 그들(의원들)이 굴복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민은 지금부터 11월까지 국경이 안전하지 않은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 친구들 때문이란 점을 알 것”이라고 했다.
Q5. 우크라이나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
백악관은 지난달 10일 예산 고갈로 인해 우크라이나 지원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이 지난 1일 500억유로(약 71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극적으로 결정했지만 이는 피란민 지원 같은 비(非)군사적 재정 지원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선이 큰 변동 없이 교착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지 못하면,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