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기억력 나쁜 노인’으로 표현한 특검 보고서의 여파가 미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 수사 책임자인 로버트 허(51) 연방 특별검사 임명 당시 법무부와 민주당이 그를 평가했던 발언들이 주목받고 있다.

로버트 허 연방 특검. /AP 연합뉴스

허 특검은 작년 1월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이 임명했다. 갈런드 장관은 특검 임명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그는 검사로서 길고 저명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며 “미 (연방) 검사로서 중요한 국가 안보, 공공 부패 및 기타 주목할만한 문제를 감독해왔다”고 했다. 상원 법사위원장 딕 더빈 의원(민주당)은 당시 “갈런드 법무장관은 법무부에서 정치화되는 모습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 문제에 대한 특별검사의 임명은 그 약속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고 했다. 허 특검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법무부 수석차관보와 메릴랜드주(州) 연방 검사장을 지낸 공화당원이다. 허 특검이 바이든 대통령과 다른 정치 성향을 갖고 있음에도 갈런드 장관이 그를 특검으로 임명한 것을 치켜세운 것이다. 더빈 의원은 “허 특검은 초당적으로 인준을 받은 저명한 검사”라며 “(특검 임명은) 수사가 공정하고 청렴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미국 국민에게 심어줬다”고도 했다.

1973년 뉴욕의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인 허 특검은 마취과 의사였던 아버지, 간호사였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하버드대 학부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을 거쳐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윌리엄 렌퀴스트 전 연방대법원장의 재판연구원(law clerk)을 거쳐 법무부에 합류했다. ‘한국 사위’로 유명했던 래리 호건 당시 메릴랜드 주지사는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 범죄가 늘어나자 2021년 4월 그를 대응팀 책임자로 발탁했다.

그러나 지난 8일 허 특검이 불기소 결정을 발표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늙고 판단에 장애가 있다는 인상을 남긴 특검 보고서가 발표되자 민주당과 백악관 등에선 강력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은 예고가 없던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내 기억력은 괜찮다(fine)”, “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최적격 인물”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자신이 장남의 사망 시점을 기억 못한다고 적은 데 대해 “나한테 아들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말해줄 사람은 필요 없다. 어떻게 감히 그 얘기를 꺼내느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분명히 정치적 동기가 있고, (특검 주장에) 근거는 없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임기 중 최악의 날”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10일 후원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특검이 부정확하고 정치적인 인신공격”을 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질 여사는 특검이 바이든 대통령이 장남 보의 사망 연도를 떠올리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고 “날 믿어달라. 자녀를 잃은 누구나 그러듯 조는 보와 그의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한다”며 “그 공격을 읽는 심정이 어땠는지 상상해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this) 특검이 무엇을 달성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난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점수를 따기 위해 우리 아들의 죽음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도 했다.

특히 민주당 내에선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특검이 확인해 준 셈이 됐다며 불안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소속 전략가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특검이 기소조차 안 했다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은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고령’ 정치 쟁점화 하는 공화당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머틀비치 인근의 한 대학교에서 유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이 과연 정신 상태 때문에 (대선) 출발선까지라도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전날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전미 총기협회(NRA) 집회에선 “바이든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했다.

트럼프와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바이든, 트럼프 모두를 상대로 공세에 나섰다. 같은 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에서 진행한 유세에서 헤일리는 “우리는 특검이 기억력이 감퇴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고 했다. 헤일리는 또 트럼프가 과거 자신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헷갈렸던 점을 언급하며 “(고령 리스크는) 바이든을 넘어서는 문제”라고도 했다.

그는 이날 유세에서 정신 능력 시험지도 배포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시험지 사진에는 뱀, 코끼리, 악어 등의 그림을 보고 동물 이름 말하기, 실선으로 그려진 의자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기, 숫자와 알파벳을 상향식으로 교차해 선으로 잇기 등의 문항이 담겨있었다. 헤일리 캠프는 이와 별개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말실수하거나 말을 머뭇거리는 영상 등을 보여주는 전광판 차량 운행도 시작한다고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