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입’과 ‘바이든의 머리’… 세계의 걱정거리로 -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혐의를 수사해온 로버트 허 특검은 지난 8일 불기소 보고서에서 바이든을 “동정심 많고 선의를 가졌지만,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라고 표현해 미 정치권에 충격을 줬다. /로이터 뉴스1

“동정심 많고 선의를 가졌지만, 기억력이 나쁜 노인(sympathetic, well-meaning, elderly man with a poor memory).”

조 바이든(82)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의혹’을 수사해 온 연방 특별검사 수사 보고서에 적힌 이 한 문장이 미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가 11월 미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작년 1월 임명된 한국계 로버트 허(51) 특검은 지난 2022년 11월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백악관 기밀문서를 개인 사무실로 유출한 혐의를 수사해왔다. 그는 지난 8일 수사 종결 사실과 함께 발표한 보고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임기를 마치고) 민간인 시절 고의로 기밀문서를 보관하고 공개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사안에 대해 형사 고발이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불기소 방침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작년 7월 콜로라도주(州) 콜로라도스프링스의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넘어져 부축받고 있는 모습.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생도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고 자리로 돌아가던 중 바닥에 있는 검은 모래주머니에 발이 걸려 넘어졌지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AP 연합뉴스

특검 보고서에서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라는 표현은 바이든이 기소될 경우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그렇게 묘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언급됐다. 특히 보고서는 바이든이 자신이 언제 부통령으로 재직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장남 보가 몇 년도에 사망했는지도 떠올리지 못했다고 했다. 나이 때문에 지지자들의 우려를 받아온 바이든으로선 뼈아픈 평가였다.

바이든은 특검 보고서 발표 당일 예고가 없던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내 기억력은 괜찮다” “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최적격 인물”이라며 반박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허 특검이 공화당 출신임을 지적하면서 “특검 보고서는 분명히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본다”고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반박 회견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멕시코 대통령이라고 잘못 언급하는 말실수를 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11일 백악관에 전용 헬기로 도착한 뒤 걷고 있다. 바이든의 부통령 시절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혐의를 수사해온 로버트 허 특검은 불기소 보고서에서 그를 “동정심 많고 선의를 가졌지만, 기억력이 나쁜(poor memory) 노인”이라고 표현해 미 정치권에 충격을 줬다. /UPI 연합뉴스

그는 지난 7일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2017년 별세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혼동했고, 6일엔 공개 석상에서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를 기억해내지 못해 한동안 침묵했었다. 미 언론들은 “일각에선 ‘바이든 임기 중 최악의 날’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고 했다.

특검 보고서 발표 직후인 9~10일 미 ABC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와 함께 미국 성인 528명을 조사해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86%가 “바이든이 재선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고 답했다. 공화당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이 되기엔 고령이라는 응답은 전체의 62%로 바이든보다 24%포인트 적었다. ‘고령’에 대한 우려가 바이든에게 쏠리는 데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더 쉰 듯한 목소리를 내는 데다, 체구도 더 허약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정치 쟁점화에 나섰다. 트럼프는 10일 유세에서 “바이든이 과연 정신 상태 때문에 (대선) 출발선까지라도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 대사는 유세장에 뱀, 코끼리, 악어 등의 그림을 보고 동물 이름 말하기 등의 문항이 적힌 정신 능력 시험지를 배포하기도 했다. 헤일리는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를 겨냥해 75세 이상 고령 정치인의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