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프라이머리(예비경선) 투표가 24일 오전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겨루는 가운데, 트럼프가 이 곳에서도 큰 격차로 승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주, 네바다주 등에서 연승을 거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까지 승리할 경우 사실상 대선 후보 자격을 확정짓게 될 것이란 평가다.
김동석(66)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날 승리를 통해 ‘공화당 지배 체제’를 완성, 공표할 것”이라며 “그간 트럼프가 앞세워 온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 이념이 당을 정식으로 장악하게 되는 날”이라고 했다. 이어 “헤일리는 이날 패배에도 불구하고 계속 경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는 절대 안된다’는 공화당 주류 기업들의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만큼 당분간은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미 최대 한인자유권단체 KAGC를 이끄는 김 대표는 전날부터 이틀간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 현장 곳곳을 훑었다. 김 대표에게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판세와 향후 전망을 물었다.
-모두가 ‘트럼프 압승’을 예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곳에 미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미 전역에서 흑백 인종 차별이 가장 심했던 남부 주들을 가리키는 ‘딥 사우스(Deep South)’의 대표 지역이다. 5분의 4가 공화당원인 그야말로 보수의 ‘텃밭’이다. 공화당 표심(票心)을 실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작점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비당원도 투표할 수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 3일 치러진 민주당 프라이머리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는 누구든 투표할 수 있는데 당시 투표율이 3.9%에 불과했다. 그럼 나머지 유권자 96%가 이날 투표 대상이다. 이 곳에서 트럼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혹은 헤일리가 얼마나 선방하는지 등이 최대 관심사다.”
정치분석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538·미국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의미)가 이날 기준 공화당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여론조사를 평균한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63.6%의 지지율로 헤일리 전 대사(33.1%)를 30.5%포인트 앞서고 있다.
-헤일리는 ‘정치적 텃밭’인 이 곳에서 왜 이렇게 인기가 없나.
“헤일리는 이 지역에서 8년동안이나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헤일리는 이 곳에서 ‘은혜를 저버린 배신자(traitor)’ 취급을 받고 있더라.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만들어줬는데도 신념을 바꾼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미 공화당 내부에서 가장 보수적인 파벌 중 하나가 ‘티파티(Tea Party)’다. 2008년 흑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놀란 미 백인 우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결성한 우파 정치조직인 티파티의 원동력은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늘면서 자신들이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성난 백인(angry white)’들의 분노였다. 이런 분노가 지금의 트럼프를 만들었다. 이 티파티가 키워준 대표적인 인물이 헤일리다. 2010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티파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헤일리가 중도·온건 목소리를 내면서 트럼프와 대적하고 있다. 이를 본 강성 공화당원들이 분노하고 있다. 안 그래도 욕 먹던 헤일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MAGA’와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반대로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에겐 열광하고 있다. 어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도(主都) 컬럼비아에서 1시간 넘게 떨어진 시골에 6000명이 모인 걸 보라. 사우스캐롤라이나 유권자들은 현재 트럼프에 열광하지만 그 이면엔 누가 가장 미국을 우선시하나(아메리칸 퍼스트), 어느 후보가 가장 MAGA를 잘 구현하느냐를 보고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중도 탈락한다? 트럼프 이후에도 그보다 더 강력한 고립주의, 반(反)이민, 반연방을 부르짖는 인사가 계속해서 나오고 공화당은 그런 사람들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헤일리는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계속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 공화당에는 집단 지성이란 게 있었다. 존 매케인 같은 합리적인 정치인들이 있었다. 2008년 오바마 당선 이후로 깜짝 놀란 강경 우파 세력들이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을 앞세워 당을 뒤집어놨다. ‘트럼피즘’은 이런 당내 분위기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반감을 가진 공화당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공화당의 주류 ‘돈 줄’인 기업들과 보수 성향 지식인들 사이에선 여전히 “트럼프 만은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공화당 기업들의 대부분은 트럼프에게 자금을 대지 않고 있다. 공화당 ‘큰손’인 찰스 코크 코크인더스트리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치단체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은 헤일리를 돕고 있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도 헤일리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관세 정책 등은 기업들에게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리더십’은 예측도 안되기에 기업들에겐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의 대안’으로 생각한 공화당 큰손들은 잇따라 헤일리에게 돈을 건네고 있다. 이미 헤일리는 ‘트럼프 제국’에선 퇴출된지 오래다.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선거에서 이미 트럼프와는 결별했고, 다른 편에선 선거 자금도 대주는데 왜 그만두겠느냐. 헤일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선거 다음날 곧바로 미시건으로 이동해 선거 유세를 한다. 미시건에서 27일 공화당 프라이머리가 열린다. 계속해서 해보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어떻게 나올까.
“트럼프는 ‘자금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수천~수만명이 몰리는 대형 유세를 하는데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가는데, 법적 비용까지 산더미같이 불어나면서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헤일리가 그만두지 않으니 그야말로 ‘목젖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트럼프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선거 승리를 계기로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접수’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로라 맥대니얼이 현직 의장인데 트럼프가 ‘리더십 교체’를 선언했다. 맥대니얼이 헤일리나 이미 사퇴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 다른 주자가 여전히 경쟁한다는 이유로 당 자금을 트럼프에게 몰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격분한 트럼프는 “MAGA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수장을 갈아치우겠다는 계획이다. 차기 의장으로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 대선 캠프 고문인 크리스 라시비타를 앉히려고 하고 있다. 당의 ‘돈줄’을 장악해 공화당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다. 이날 승리를 통해 공화당 다수 여론이 트럼프로 집중되는 게 확인되면, 이런 움직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공화당원들의 입지는 더욱 작아질 것이다.”
-트럼프가 여론조사에서처럼 득표율 30%포인트 이상으로 승리하면 헤일리는 더욱 위축되지 않겠나.
“헤일리가 ‘30%포인트’ 이내 격차로 패배하면 공화당의 큰 손들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헤일리에 대한 자금 지원을 계속할 거라고 본다. 관전 포인트는 헤일리가 과연 여론조사에서 나온 수치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드냐는 것이다. 공화당 중도층의 공략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