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세 번째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서도, 백악관 무급(無給)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름을 기억 못 했다. 그냥 “키도(kiddo·'얘야’ 정도의 호칭)”라고 불렀다. 2년여가 지난 1998년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터졌고, 이후 세상은 아무도 그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름엔 ‘창녀(whore)’ ‘갈보(bimbo)’ ‘헤픈 여자(tart)’ 등 온갖 치욕스러운 표현이 따라붙었다.
그 르윈스키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올해 11월 미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연방·주 차원의 총선에서 꼭 투표하라는 캠페인에 모습을 드러냈다. 클린턴이 22세의 백악관 무급 인턴 르윈스키와 처음 관계를 가졌을 때, 50세였다. 르윈스키는 작년 7월 그 나이가 됐다. 르윈스키는 한 인터뷰에서 “내게 50세는 축복”이라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르윈스키는 11월 미 대선과 연방·주 차원의 총선을 앞두고 미 패션 브랜드인 레포메이션(Reformation)이 민간 단체 ‘보트(vote.org)’와 함께 벌이는 유권자 등록 및 투표 독려 캠페인 ‘당신에겐 힘이 있어요(You’ve Got the Power)’의 ‘얼굴’로 나섰다. 르윈스키는 레포메이션의 여러 의상을 입고 나와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지난 26일 나온 패션 잡지 엘르(Elle) 인터뷰에서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무관심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투표 독려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투표는 우리의 목소리이며, 목소리를 낼 때 우리에게 힘이 있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 4년간 (정치에 대해) 불평하고 싶다면, 투표하라”고 말했다.
클린턴과의 스캔들 후 망가졌던 르윈스키의 재기(再起)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려고 애썼다. 2005년 영국 런던으로 갔고,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사회심리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조용히 강의실과 도서관만 오갔다. 졸업 후 ‘보통 생활’로 복귀하기를 원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직장은 없었다. 늘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2017년 미국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미투 운동’(성범죄 가해자 폭로)은 역설적으로 르윈스키에게 활동가로 변신할 기회가 됐다. 많은 여성이 르윈스키를 기억했고, 한 여성 운동가는 르윈스키에게 “그동안 그렇게 혼자 외로웠을 텐데, 정말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타임스는 “22세 나이에 세계 곳곳에서 ‘헤픈 여자’라는 수치를 당했던 르윈스키는 권력을 쥔 탐욕스러운 남성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파괴되는 여성들의 수호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했다.
르윈스키는 지난해 10월, 사회의 왕따·괴롭힘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공개적인 굴욕과 수치심에서 살아남은 저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 가치가 있기를 바란다. 인터넷을 통한 왕따 피해자들에게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레포메이션은 투표 캠페인의 모델로 르윈스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얼굴’이 없는 브랜드가 투표를 하라고 말하는 것은 효과가 없을 듯해 상징적인 인물과 손을 잡았다. 개혁가이자 활동가인 모니카(르윈스키)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힘을 발휘하도록 수십년 동안 옹호해 왔다”고 설명했다. 레포메이션은 캠페인과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주로 구성된 패션 컬렉션을 출시했다. 후드 티 등의 수익금은 ‘보트’에 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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