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선에서 4년 만의 재대결이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9일 미국 남부 텍사스주(州)를 찾았다. 대선 최대 이슈로 떠오른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 문제를 놓고 현직인 바이든은 방어, 전직인 트럼프는 공격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들은 이를 ‘국경에서의 결투’라 표현하며 “앞으로 펼쳐질 대선 캠페인을 미리 보는 듯했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멕시코의 피에드라스네그라스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텍사스의 접경 도시 이글패스를 방문했다. 연초에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이 몰려가 민주당 소속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의 탄핵을 요구하며 불법 이민 문제의 정치 쟁점화에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이다. 실제 공화당은 지난달 13일 마요르카스 장관에 대한 탄핵안을 하원에서 가결 처리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날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국경을 따라 리오그란데강 주변에 설치한 철조망을 둘러봤다. 이 철조망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형태다. 바이든 행정부는 밀입국 시도자 등이 크게 다칠 수 있다며 철거를 주장했지만, 공화당은 불법 이민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불법 이주민 유입은 바이든의 침공”이라며 “미국은 지금 살인·마약 같은 바이든표 이주자 범죄가 창궐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공개된 데일리메일 기고를 통해 “바이든의 계획으로 최소 900만명이 미국으로 대거 불법 이주했다”며 “(대선에서 이기면) 취임 첫날 국경을 봉쇄하고 이들을 추방하는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했다.
바이든은 같은 날 오후 이글패스에서 약 480㎞ 떨어진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을 찾았다. 국경순찰대 대원들을 만나 이들의 고충을 들었다. 국경순찰대에 따르면, 불법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체포된 사람 수는 지난해 12월 24만9785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바이든은 국경 통제 강화를 위한 인력·장비 확충이 포함된 예산안 처리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향해 “공화당 의원들에게 법안을 막으라고 ‘정치’를 하는 대신 함께 미국인을 위해 일이 (마무리)되도록 하자”고 했다.
바이든은 최근 국경 통제 강화 방안이 담긴 행정조치를 검토하는 등 기존의 개방적 이민 정책에서 다소 선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한 여론이 그만큼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이민 문제(28%)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을 정도로 불법 이주자를 보는 민심은 좋지 않다. 베네수엘라 출신 20대 남성 불법 이민자가 지난달 조지아주에서 아침 운동을 하러 외출한 22세 미국인 여대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사건도 이런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불법 이민 문제만큼은, 강경 대응을 천명한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NBC뉴스가 2020년 대선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민 문제에 있어 누구를 더 신뢰하냐’는 질문에 트럼프가 바이든을 16%포인트 차이로 앞섰는데, 지난 1월 조사에선 이 격차가 3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두 사람이 같은 장소(텍사스주)에서 ‘대결’을 벌이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둘 다 대선 레이스에서 최대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큰 이민 문제에서 우위를 선점하려 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텍사스 서부지방법원은 이날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 입국자들을 주 차원에서 직권으로 체포·구금할 수 있게 한 텍사스주 이민법에 대해 시행 보류 명령을 내렸다. 지난 1월 바이든 정부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집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앞서 애벗 주지사는 급증한 불법 이민에 대응하고자 지난해 12월 이 법안에 서명, 1일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애벗 주지사는 곧바로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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