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경선(프라이머리)이 동시에 열린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바이든도 트럼프 모두 대통령까지 한 사람들이지만 ‘굳이 또 한번 더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딱히 끌리는 후보가 없고 신문에서 이 사람들 뉴스 보는 것도 이젠 피곤하다. 국민들이 11월 대선에서 굉장히 어려운 선택지(tough choice)를 받아들게 됐다. 도저히 모르겠다!”

5일 오전 미국 버지니아주의 ‘헌트 밸리(Hunt Valley)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70대 노부부가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대선 후보 선출이 한창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캘리포니아·텍사스 등 15개주와 1차지령(사모아)에서 경선을 동시에 치르는 이른바 ‘수퍼 화요일(Super Tuesday)’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미 대선의 대진표가 사실상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인구 800만의 버지니아에서도 아침부터 비가 내린 가운데, 유권자들이 당적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Primary)가 열렸다. 민주당은 99명, 공화당은 48명의 대의원이 걸려있다.

수도 워싱턴DC에 접해있는 버지니아는 2008년 대선부터 민주당 후보가 항상 승리해온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민주당 우세주)다. 본선에선 13명의 대의원이 걸려있는데, 지난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54.11%를 득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44%)을 10% 포인트 차 이상으로 크게 앞섰다. 하지만 2021년 주지사 선거에선 사모펀드 칼라일그룹 출신인 글렌 영킨이 공화당 소속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민주당이 마냥 안심만 할 수는 없는 선거구다. 본인을 민주당원이라 밝힌 윌리엄(48)씨는 “바이든을 지지하지만 고령의 나이, 잦은 말실수가 걱정된다”며 “현직이라고 프리패스를 줄 것이 아니라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 그레첸 휘트머 미시건 주지사 같이 젊은 잠룡들이 나와 경선을 흥행시켰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민주당 프라이머리 투표 용지에는 바이든과 작가 매리언 윌리엄슨, 딘 필립스 하원의원 3명의 이름 뿐이었다.

5일 민주당과 공화당 경선(프라이머리)이 동시에 치러진 버지니아주의 한 투표소에 노란색으로 안내문이 붙어있다. 버지니아주 일부 카운티에는 한인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어 한국어로도 안내 문구가 적혀있는걸 볼 수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지난달 발표된 ABC방송·입소스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86%가 “바이든이 재선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고 했고, 3살 어린 트럼프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비율이 60%가 넘었다. 버지니아의 또 다른 투표소인 ‘버크 센터 도서관’ 앞에서 만난 60대 남성 시드니씨는 “30대 때부터 한번도 빼놓지 않고 ‘수퍼 화요일’에 투표해왔는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졸리고 지루한 분위기인 것 같다” “두 후보 모두 좋은 팀과 인재들의 서포트를 받으면 국정 운영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암울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각 유권자는 입구에서 사전 등록 여부, 개인정보(주소 등) 확인을 거쳐 민주당 또는 공화당 한 곳의 경선에만 참여할 수 있다. 선거 안내를 하는 직원들은 “어느 당에 투표할 것이냐?”라고 하지 않고, “오늘 어느 당의 경선에 참여할 것인가?”라고 물은 뒤 거기에 맞는 투표용지를 건냈다. 투표소 입장부터 퇴장까지 빠르면 모든 과정이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투표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투표소 앞을 지키고 있던 버지니아주 선거관리담당 당국자는 “이 투표소에선 총 7명이 와서 일하고 있는데 투표를 안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호주 사례가 농담처럼 회자됐다”며 “선거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이 덜하고, 평일(화요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미리 투표를 하는 경우도 많아 비교적 한산하다. 하지만 11월 본선에서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수퍼 화요일 경선 결과는 이르면 오후 7시(한국 시간으로 6일 오전 9시)부터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의 득표율, 트럼프의 대세론 굳히기, 헤일리의 중도 사퇴 시점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바이든은 이날 “이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할 시간”이라며 투표 참여를 독려했고, 트럼프도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SNS) ‘트루스 소셜’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냈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