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민주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이 5일 ‘수퍼 화요일’에 나란히 압승하며 11월 대선에서 4년 만에 맞붙는 재대결 구도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날 양당은 미 15주와 1개 해외 영토(미국령 사모아)에서 한꺼번에 경선을 치렀다.

트럼프는 이날 동부 노스캐롤라이나·버지니아·매사추세츠·메인, 중부 테네시·아칸소·오클라호마, 남부 앨라배마 등 14주에서 유일한 경쟁자로 남은 니키 헤일리 전 주(駐) 유엔 대사를 상대로 손쉽게 승리했다. 헤일리는 완패가 결정된 뒤 경선에서 하차하기로 했다고 AP가 보도했다.

헤일리는 이날 주요 지역에서 트럼프에게 20~30%포인트 차로 크게 밀렸으며, 민주당 성향이 강한 버몬트주에서만 불과 4%포인트 차이로 승리해 트럼프 대세론을 막지 못했다.

이로써 지난 1월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 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당내 경선에서 워싱턴 DC와 버몬트를 제외하고 모두 승리한 트럼프는 본격적으로 본선 준비에 나서게 됐다. 이번 ‘수퍼 화요일’에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차지해야 하는 전체 대의원의 약 3분의 1이 배정돼 있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이날 승리 확정 직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가진 연설은 사실상 후보 확정 수락 연설이나 다름없게 됐다. 트럼프는 이날 미국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남부 국경 이민자 유입 문제를 거론하며 보수 표심을 공략했다. 그는 “우리 도시들이 이민자들이 저지른 범죄로 들끓고 있다”면서 “바이든 이민자 범죄”라고 지칭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남부 국경 지대 혼란의 책임을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가 미국을 비웃고, 이용해 먹고 있다”고 말했다.

5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선거 관리 책임자가 성조기 무늬의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콜로라도를 비롯한 15주와 미국령 사모아에서 오는 11월 대선에 나설 각 당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이 실시됐다. /AFP 연합뉴스

이번 경선에서 트럼프의 유일한 공화당 내 경쟁자였던 헤일리는 ‘공화당 주자를 조속히 확정해 바이든과의 본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퇴하라’는 당 안팎의 거센 압박에도 경선을 이어왔지만 수퍼 화요일에도 참패를 이어가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다. 헤일리는 지난달 자신이 주지사를 지냈던 정치적 기반인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참패한 직후 미 보수 진영의 ‘큰손’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일명 코크 네트워크)’이 지원을 중단하는 등 ‘자금줄’도 끊기며 사면초가 상황에 놓여왔다.

관건은 트럼프와 날카롭게 각을 세워온 헤일리가 그를 지지하느냐다. CNN은 “헤일리는 트럼프가 수퍼 화요일에서 대승을 거둔 뒤 경선 하차를 결정했지만, 트럼프에 대한 지지 선언을 당장 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헤일리 측근을 인용해 보도했다. 헤일리는 수퍼 화요일 직전 가진 인터뷰에서도 경선 패배 시 트럼프 지지 여부에 대해 즉답하지 않았다.

민주당 경선에서는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이 대부분 경선 지역에서 8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다. 현직인 바이든은 당내에 마땅한 경쟁자가 없다. 그러나 이날도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인 아랍계 유권자들의 ‘성난 표심’(票心)이 드러났다. 이날 미네소타주(개표율 89% 기준)에서 바이든의 중동 정책에 반대해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에 기표한 투표가 19.1%(4만5000여 표)에 달했다. 미네소타는 1990년대 내전을 피해 미국에 정착한 소말리아 난민 등 아프리카-아랍계 출신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간 전쟁에서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다고 느끼는 데 따른 반발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아랍계 유권자가 많은 미시간주 경선에서도 ‘지지 후보 없음’이 13%였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 등은 “2~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경합주에서 트럼프를 이기기 위해선 지지층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게 필수”라고 했다. 바이든은 이날 성명을 내고 “트럼프 재선은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혼란과 분열, 어둠’으로의 복귀”라고 했다. 바이든은 7일 연방의회 국정 연설에서도 트럼프 재집권의 ‘위험성’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반(反)트럼프’ 전략을 통해 지지층의 민심 이반을 잠재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편 잇단 민형사 소송 비용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트럼프가 지난 3일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는 “순자산이 2000억달러(약 267조원)에 달하는 머스크가 트럼프를 대대적으로 지원한다면 (머스크 혼자로도) 바이든 캠프의 재정적 우위를 없앨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머스크가 트럼프에게 기부하기로 결정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퍼 화요일 (Super Tuesday)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같은 날 가장 큰 규모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치르는 날. 이날 결과에 따라 양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3월 5일 캘리포니아 등 15주와 자치령 사모아 등 총 16지역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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