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 격퇴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 사이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 측에 대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고, 집권 민주당 내부에서는 심지어 이스라엘 정권 교체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바이든이 하마스 무력 격퇴를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재선 가도의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최대한 거리 두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14일 모세스 팜 등 이스라엘 단체 2곳과 즈비 바 요세프 등 이스라엘인 3명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확장 과정에 관여하면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해쳤다는 이유다. 국무부는 지난달과 작년 12월에도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제재한 바 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을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스라엘 측을 잇따라 제재 대상에 올린 건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작년 10월 1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하는 모습. / 신화 연합뉴스

미국 제재가 발표된 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네타냐후 정권을 겨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슈머는 “매우 많은 이스라엘인이 정부의 비전과 방향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중대한 시점에 나는 새로운 선거가 이스라엘의 건전하고 개방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라고 했다. 정권 교체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현 정부가 전쟁 수행 과정에서 가자지구 민간인의 과도한 희생을 유발함으로써 세계에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이스라엘은 왕따(pariah)가 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도 했다. 또 “네타냐후 연립정부가 계속 권력을 유지할 경우에는 미국은 현재 진로를 바꾸기 위해 우리의 영향력을 사용, 이스라엘 정책 형성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이 중동 내 최대 우방 이스라엘과 개별 사안을 두고 견해 차이를 표출한 적은 있지만, 그간 미국이 적성 국가를 비판할 때 단골로 써온 단어인 ‘왕따’까지 동원할 정도로 미·이스라엘 갈등이 노골화된 경우는 전례가 드물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권 교체 필요성까지 언급한 슈머 자신도 유대계로,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찾아 네타냐후 정권 지지 의사를 표명했었다.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 대표(오른쪽)와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이 작년 8월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 1주년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렇게 바이든 행정부 내 기류가 180도 바뀐 것은, 역대 선거마다 민주당의 집토끼 역할을 해왔던 아랍·이슬람계 유권자들의 표심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격퇴전으로 가자지구에서 사상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를 제어하지 않는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에 실망한 아랍·이슬람계 유권자들이 대거 반(反)바이든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고, 사실상 민주당 내 유일 후보였던 바이든은 실제로 아랍·이슬람계 밀집 지역인 미네소타·미시간주 경선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이 쏟아진 ‘지지 후보 없음’ 표에 바짝 긴장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태도는 미국 내 유대인 표심의 반발을 불러오는 모양새다. 미 공화당 유대인 단체인 유대인 연합은 “이스라엘이 야만적인 테러리스트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의롭게 싸우고 있는 가운데, 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당 의원이 유대인 국가의 등에 칼을 꽂았다”며 슈머를 맹비난했다. 이 때문에 바이든이 양측 표심 동향을 보며 적절한 수위 조절 등 관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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