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이 자신보다 3살 많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신 건강과 인지 능력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이는 부친인 고(故) 프레드 트럼프 시니어(1905~1999)가 말년에 치매를 앓았던 것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50줄에 접어든 트럼프가 부친이 치매를 앓은 사실을 알았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인생무상을 토로했는데, 이에 대한 유전 우려와 일종의 ‘컴플렉스’가 발현돼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 “트럼프의 무자비한 공격 뒤엔 그의 부친이 겪은 치매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의 기업인·자선가·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프레드는 80년대 후반부터 치매 증상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로 2020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를 비판하는 책을 낸 조카 매리에 따르면, 이때부터 프레드가 자녀들을 못 알아보기 시작했고 한 파티에서 트럼프에게 “차를 사달라”는 허락을 구하며 캐딜락 자동차 사진을 보여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프레드는 1991년에 공식 치매 판단을 받았는데, 이는 트럼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다. 트럼프는 이후 플레이보이 잡지, 뉴욕타임스(NYT) 등과 가진 인터뷰에서 “50세가 넘어가고 부친의 치매를 알게되고 나서부터 인생의 덧없음, 죽음과 불멸이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 가족들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트럼프 측근들은 “인지 능력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수년 동안 부친의 치매가 악화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본 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며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했다. ‘치매가 대(代)를 이어 유전될 가능성이 큰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트럼프가 언젠가 치매가 본인에게도 유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유세 때마다 바이든을 향해 “인지 능력이 저하됐다”며 비판하고, 공식 석상에서 논란이 된 바이든의 행동들을 흉내내며 조롱해왔다. 매리는 “트럼프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늘 유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엄청난 천재성(Super Genius)’을 어필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부분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트럼프는 치매 초기 증상을 잡아낼 수 있는 ‘몬트리올 인지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음을 강조하며 바이든을 압박하고 있다. WP는 “트럼프가 이 평가에 두 번이나 통과했다고 자랑했지만, 대변인 측은 구체적인 결과 공개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이 평가를 마지막으로 받은 것은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8년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이유로 이 시험을 고안한 신경학자 지아드 나스레딘은 “70대가 2018년 이후 한 번도 평가를 받지 않았다면 오늘날 인용하기엔 결과값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캠프 선임고문인 제이슨 밀러는 WP에 “트럼프는 두 번의 평가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바이든이 같은 방에서 동시에 시험을 받겠다고 하면 세 번째 평가도 받을 의향이 있다”며 “사실 트럼프는 모든 대통령이면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