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미국 정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반독점법으로 압박하며 생긴 기회를 발판으로 성장한 회사다. 그럼에도 과거의 MS와 비슷한 폐쇄적 생태계를 만들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지난 21일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며 공개한 88쪽짜리 소장(訴狀)을 통해 애플이 2007년 스마트폰(아이폰) 출시 이후 단계적으로 구축한 애플의 ‘닫힌 생태계’를 정조준했다. 아이폰과 앱(응용 프로그램)을 비롯해 음악·금융 등 부가 서비스, 연동 액세서리인 스마트워치(애플워치)까지 모두 치밀하게 연계돼 다른 기업의 진입을 막는 사업 행태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불법 행위라고 지목한 것이다. 아이폰의 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약 70%다.

애플은 자사 상품·서비스끼리만 잘 연동되는 폐쇄적 생태계를 사업 전략으로 삼아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타사 서비스와 호환되지 않는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소비자의 편익을 해치고 잠재적 혁신 기업의 시장 진입을 차단했다는 것이 법무부 주장이다. 조너선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은 이날 소장을 공개하며 “애플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두더지 잡기’ 하듯 경쟁사들을 억압해 왔다”며 “이런 행태는 소비자의 경험도 저하시켰다”고 했다. AP 등은 법무부 관계자를 인용해 “법에 따라 법무부가 애플의 해체 등 구조적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전했다.

美 소송 맞은 애플, 中 상하이서 세일즈 - 팀 쿡(오른쪽)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1일 중국 상하이에 새로 연 애플 스토어 행사에 참석해 한 여성과 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에서 아이폰 판매 실적이 감소하자 홍보에 나선 것이다. 이날 미 법무부는 애플을 상대로 "폐쇄적 생태계를 만들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며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법무부 제소가 알려진 후 애플 주가는 전일 대비 4.1% 급락했다. 애플은 성명을 내고 “법무부의 행위는 애플의 정체성 및 제품을 차별화하려는 원칙을 위협한다”고 했다.

애플은 앱을 유통하는 앱스토어뿐 아니라 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 등 기기 또한 자사 제품끼리만 잘 호환되도록 하고 있다. iOS라는 자체 운영체제(OS)를 사용하는 애플 기기끼리는 모든 기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구글 안드로이드나 MS의 윈도 등 경쟁사 제품과는 연결이 매끄럽게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는 한번 애플을 선택한 소비자가 지속해서 자사 제품만 사용하도록 하는 애플의 핵심 전략이었다. 법무부는 이런 애플의 관행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이를 반독점법 위반이라고 봤다.

아이폰의 문자메시지 서비스인 ‘아이메시지’에서 아이폰 사용자끼리만 파란 말풍선이 뜨도록 하고, 다른 스마트폰에서 보낸 메시지는 녹색으로 표시되도록 한 것도 문제라고 봤다. 아이폰 이용자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에게 사진·동영상을 전송하면 속도나 화질이 저하되도록 만든 조치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이 애플의 서비스·액세서리를 좋아할 경우 다른 휴대폰은 못 쓰고 아이폰만을 써야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애플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이런 식으로 제한해 아이폰 가격을 가파르게 올려왔다는 사실을 지목하며 이 또한 권한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애플의 독점으로 아마존·HTC·LG전자 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어 소비자 선택권이 줄었다고 보았다.

법무부는 소비자뿐 아니라 아이폰 사용자에게 앱을 팔려고 하는 개발자 등 공급자에게도 독점적 지위로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했다고 보았다. 애플은 자사 기기에서 쓰는 앱의 경우 애플의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구매하도록 강제하면서 앱 개발사엔 최대 30%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소송은 미 정부가 어느새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을 단순한 기기가 아닌 ‘플랫폼(소비자와 생산자가 모여 거래를 하는 공간)’으로 보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법무부는 소장에 “스마트폰은 플랫폼”이라고 적시하면서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불공정 행위가 게임·음악·금융 등 다른 산업의 혁신까지 해칠 수 있다”고 했다.

법무부는 1990년대~2000년대 초에 걸쳐서 진행된, MS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 애플의 성장 계기였다는 사실을 소장에 반복해 상기시켰다. 한때 적자 회사였던 애플은 2001년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 ‘아이튠스’와 음악 재생기인 ‘아이팟’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했고 이를 토대로 혁신 상품인 ‘아이폰’을 내놓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반독점 소송의 압박으로 MS가 윈도에서 아이튠스 같은 타사 서비스가 잘 구동되도록 양보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애플도 없었을 것이라고 법무부는 강조했다. 실제로 MS가 아이튠스에 문을 연 2002년 이전에 수십만 대 정도 팔린 아이팟은 MS 윈도우가 개방된 후 한 해 동안 수백만 대가 팔리며 매출이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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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캔터 미 법무부 반독점국장이 21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캔터 국장 뒤는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