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22일 모스크바 공연장 총격 테러와 관련, “정부가 이달 초 모스크바 콘서트장을 포함해 대형 모임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러시아 당국에도 이 정보를 공유했다”고 했다. 러시아가 미국의 우방국은 아니지만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고 귀띔을 해줬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런 사전 경고를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와중에 모스크바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려는 ‘미국의 공작’으로 규정하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총격 테러 직후 “미국 정부는 ‘경고 의무’에 관한 정책에 따라 러시아 당국에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2주 전인 지난 7일 주(駐)러시아 미국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극단주의자들이 콘서트를 포함해 대규모 모임을 대상으로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를 검토 중”이라며 현지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에게 48시간 안에 대피하라고 권고했다. 다만 대사관이 언급한 ‘공격 계획’이 이번 테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은 2001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등을 비행기로 파괴한 9·11 테러 이후 유사한 테러 방지를 위한 정보 수집과 분석, 사전 억제에 주력해 왔다.
BBC는 “동맹이 아니라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 징후가 있을 경우 이를 알려줄 정보 당국 간 소통 채널이 존재한다”며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러시아로 하여금 (사전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회의를 주재하며 미 대사관 성명에 대해 “노골적 협박이자 우리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했었다. 미 국가정보국(DNI) 부국장 출신인 배스 세너는 CNN에 “‘미국이 우릴 도울 리가 없다’는, 자기중심적이고 한심한 생각 때문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안타까운 참사”라고 했다. 맥스 부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푸틴은 국민을 보호하는 일엔 관심이 없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희생양을 찾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며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차르(러시아 황제)의 안위가 가장 중요한 러시아 정권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정보 당국에 과부하가 걸리고, 최근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정보 활동의 초점이 푸틴 재선을 위한 반체제 운동에 맞춰져 외부 테러 위협이 간과됐을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무장 괴한들이 모스크바 코앞까지 왔는데도 탐지하지 못한 건 러시아 정보력이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충격과 공포’의 공격을 추구하는 테러리스트 특성상 사전 경고가 있었어도 정부가 대비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브루스 호프먼 CFR 선임연구원)이란 의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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