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 /볼티모어=김은중 특파원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로 향하는 주요 진입로가 대부분 경찰에 의해 엄격히 출입 통제되고 있었다. 전날 대형 컨테이너 화물선이 교각에 충돌해 교량이 20초 만에 무너졌다. 가운데 부분이 완전히 끊어져 물에 잠겨버린 대교가 엿가락처럼 늘어져있었고, 화물선은 교량에 충돌한 모습 그대로였다. 하늘 위로는 실종자에 대한 수색 작업 중인 미 해양경비대 헬기가 분주하게 왔다갔다 했다.

시민들은 다리가 무너진 모습을 확인하려 볼티모어항 인근 공원이나 고지대 곳곳에 모여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예 휴대용 의자를 들고와 자리에 앉아 계속 다리 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무리 지어 차를 타고 다니며 진입이 통제된 다리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는 10~20대 남성들도 보였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 될 수 있나” “정말 영화와 같은 일이다” “믿을 수 없다”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못해도 3년은 걸릴 것” “트라우마가 올 것 같다”란 각양각색 반응이 쏟아졌다. 아시아계 유학생인 쿤(Qun)씨는 “나도 차로 자주 오고가는 다리인데 사고가 새벽에 일어났기 망정이지 생각해보면 너무 소름끼치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다.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한 자동차 선적장 뒤로 무너진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의 모습이 보인다. /볼티모어=김은중 특파원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 인근의 한 녹지에서 취재진과 시민들이 모여 무너진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 쪽을 바라보고 있다. /볼티모어=김은중 특파원

자택에서 바로 다리 조망이 가능하다는 던독(Dundalk) 지역의 한 주민은 “새벽엔 별다른 소음을 듣지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보고 ‘이게 도대체 뭐야’라고 소리 지를 수 밖에 없었다”며 “볼티모어란 동네의 생명선(lifeline)과도 같은 다리인데 앞으로 겪을 불편을 생각하면 걱정이 크다”고 했다. 메릴랜드주 교통 당국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약 3만4000명이 이 4차선 대교를 이용한다. “10마일(약 16km) 떨어져 있는 ‘하버 터널’로 우회해야 하는데 앞으로 더 많이 막힐 것이 뻔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특히 통근자나 아이를 픽업해야하는 학부모들이 가장 큰 고충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무너진 교량 잔해를 치워야 하고, 수심이 깊어 시간이 1년 이상 걸리고 비용도 수억 달러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무너진 다리는 1977년 완공된 것이다. 은퇴한 60대 초반 여성 에이미씨는 “어릴 때부터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던 다리라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저렇게 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며 “애태우고 있을 실종자 가족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다만 다리가 저렇게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80년대생 흑인 시장 브랜든 스캇은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이나 원인을 따지기 보다 다치고 실종된 사람들의 목숨에 대해 얘기할 때”라고 했다. 하지만 악시오스는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이번 참사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들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대교 일대에서 대교로 향하는 진입로는 현지 경찰들이 차단하고 있다. /볼티모어=김은중 특파원

사고 이후 볼티모어항은 폐쇄됐지만 다리를 지나 만 안쪽에 있는 ‘이너 하버’나 헬렌 델리치 벤틀리 포트 일대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 국립 아쿠아리움, 하버 플래이스 등 관광·쇼핑 시설이 운집해 있는데 대부분 정상 영업 중이었고 인파도 상당했다. 아쿠아리움 관계자는 “육상 교통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어 영업을 하는데 특이 사항이 없었다”면서도 “다리를 통해 들어오는 물동량이 꽤 많아 지역 자영업자나 택배업자들이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미 해안경비대는 이날 오후 8시쯤 “최소 6명으로 예상되는 실종자에 대한 수색을 중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