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는 27일 이 학교의 희귀 고(古)서적과 원고, 예술품을 소장한 호튼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19세기 프랑스에서 제작된 한 책의 표지에서 ‘인간 피부’를 걷어냈다고 발표했다.
사람의 피부가 겉을 감싼 이 책은 프랑스인 아젠느 우세가 1879년에 쓴 ‘영혼의 운명에 대하여(Des Destinées de L’Ame)’이란 제목의 책으로, 책의 내용보다도 책을 포장한 재료 탓에 하버드대가 소장한 2000만 권의 책 중에서도 가장 논란거리가 됐다.
사실 이 책의 표지가 인피로 제본됐다는 것은 하버드대가 1934년 이 책을 처음 소장했을 때부터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2014년 6월에 하버드대는 첨단 기술을 동원해, ‘영혼의 운명’의 책 커버가 실제로 인간 피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99.9% 확인했다. 당시 하버드가 보관 중인 또 다른 ‘인피 제본’ 책은 테스트 결과 양피(羊皮)로 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버드대는 이날 “면밀한 검토와 이해 당사자들의 숙고 끝에, 이 책의 제본에 쓰인 인간 유해는 책의 출처와 이력을 둘러싼 여러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더 이상 하버드대의 소장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 인간 유해를 정중하게 처리할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버드대의 이날 발표는 2022년 이 대학의 소장품에 인간 유해가 얼마나 되는지, 또 소장품 구성요소로 얼마나 사용됐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끝에 나온 것이다. 당시 나온 보고서는 하버드에 인간의 전신 골격과 머리카락 묶음, 6500명의 북미 원주민 유해, 노예로 추정되는 아프리카 흑인 유해 19점, 고대인 골분(骨粉)이 담긴 유골함 등 2만 여 점의 인간 유해가 있다고 밝혔다.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는 애초 프랑스인 작가 우세가 친구인 의사 루도빅 볼랑에게 사후의 영혼과 삶에 대한 명상이라며 건네준 책이었다.
볼랑은 프랑스의 한 정신병원에서 숨진 신원 불상의 여성으로부터 피부를 벗겨내 책의 표지를 쌌다. 그는 이 책에 “인간의 영혼에 대한 책은 인간의 피부로 감싸야 마땅하다”며 “책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다른 장식을 넣지 않았고, 자세히 보면 모공(毛孔)을 볼 수 있다”는 육필(肉筆) 메모지를 끼어 넣었다. 이 책은 1934년 미국인 외교관 존 B 스텟슨을 통해 하버드에 기증됐다.
하버드대는 이날 발표문에서 “그 동안 이 책을 홍보하면서 과도하게 선정적이며 유머적인 톤(tone)을 사용해, 윤리적 기준에 부합되지 못했다. 이 책의 제본에 쓰인 인간 유해의 존중성을 훼손하고 지나치게 객관화했다”고 사과했다. 하버드대는 2014년 이 책이 실제로 인피(人皮)로 제본됐다는 테스트 결과를 알리면서도 “이는 인피 제본에 대한 팬(fans)들이나, 서적광들, 식인주의자들에게 굿 뉴스”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대 기준으로부터 사람의 피부로 책 표지를 만든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일일 수 있지만, 인피 제본은 최소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한때는 꽤 흔했다고 호튼 도서관 블로그는 밝혔다. 범죄 고백서 표지를 종종 그 범죄자의 피부로 만들기도 했고, 개인이 죽고 난 뒤에 가족이나 연인이 자신을 기억하기를 원할 때에 자신의 피부로 책 표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호튼 도서관은 ‘영혼의 운명’ 서적에 대한 접근을 2015년 이후 차단했지만, 인피 제본이 제거된 뒤 이를 온라인ㆍ오프라인에서 모두 접근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한편, 인피 제본 도서는 서울대에도 있다. 서울대는 2006년 8월 개교 60주년 기념 도서전시회에서 중앙도서관의 고문헌 자료 중 1700년 이전 유럽에서 출판된 ‘인피 장정 도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서울대는 소장하고 있던 인피 추정 도서 6권 중 1권에서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확인됐으며, “DNA 분석 결과 만으로는 인피로 확정 짓기는 힘들지만 조직 검사 결과 등을 고려할 때 인피로 제작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