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에 66억달러(약 8조900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8일 발표했다. 이는 당초 예상됐던 50억달러보다 대폭 증가한 액수다. TSMC는 이에 화답하듯 미국에 대한 투자액을 60% 이상 늘리기로 합의했다. 미 정부는 역시 미국에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힌 삼성전자에 대한 보조금 규모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앞세운 미 정부가 해외 선두 기업들의 첨단 생산 설비를 차례로 빨아들이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반도체 굴기’에 본격 돌입한 모양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 장관은 전날 백악관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미국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국가 안보를 강화하려 TSMC에 66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며 “TSMC는 최첨단 반도체를 미 본토에서 제조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TSMC의 (미국 내 생산) 확장으로 미국의 고객사들은 AI(인공지능), 데이터 센터, 군사 기술 등에 필수적인 ‘미국산’ 첨단 반도체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또 상무부는 직접 보조금과 함께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 규모의 저리 대출도 TSMC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총 지원 규모는 116억달러에 달한다.
TSMC에 대한 지원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제정한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기업에 반도체 분야의 보조금과 연구·개발(R&D) 비용 등 총 527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대규모 보조금을 풀어 한국·대만 등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유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TSMC는 이미 400억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州)에 반도체 공장 두 개를 짓고 있다. 이날 백악관은 TSMC가 250억달러를 추가 투자해 10년 안에 세 번째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TSMC는 2028년부터 미 본토에서 최첨단 공정인 2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반도체도 생산하기로 했다. 공정이 미세할수록 전력 효율이 높은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데, 현재 양산되는 가장 앞선 반도체는 3나노 제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간 TSMC는 최첨단 공정은 대만에서 소화하고, 레거시(구형) 반도체 물량은 해외에서 생산해 왔다”며 “미 본토에 최첨단 시설을 들이기로 한 결정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미 정가에선 미·중 갈등 고조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 증가로 인한 ‘공급망 불안정’을 고려해, 대만 정부가 생산 거점을 주요 지원국인 미국으로 일부 옮기려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당초 반도체 업계에선 TSMC가 50억달러 정도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최종 보조금 규모가 30% 이상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원금이 20억~30억달러 수준이 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지난달 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60억달러 이상을 받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가 기존 투자액(170억달러)을 배 이상으로 늘려 44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는 보도(월스트리트저널)가 이어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미 정부가 거액의 보조금을 무기로 TSMC·삼성전자 등 해외 기업들 간 ‘투자 경쟁’을 유도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몬도 장관은 브리핑에서 “미 정부는 TSMC에 60억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을 투자하지만, TSMC는 (미 정부 지원 금액의) 10배 수준인 65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했다. 해외 기업에 정부 자금을 지원하는 데 따른 논란에 대해 ‘득(得)이 훨씬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 정부는 앞서 자국 기업인 인텔에 195억달러의 파격적인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지난달 발표했다. 이는 TSMC가 받게 될 보조금의 3배에 이른다. 보조금을 발판 삼아 인텔은 올해 말 1.8나노 공정,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미국 기업 중 유일하게 TSMC·삼성전자 등과 2나노 이하 초미세 반도체 제조 공정을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텔에 ‘보조금 몰아주기’에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TSMC 등 해외 기업들에도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한 배경엔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해외 기업까지 미국으로 끌어와 ‘기술 격차’를 최대한 단기간에 좁히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원래 반도체는 미국이 발명했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 세계 생산량의 40%에 육박하던 미국 생산량이 10%까지 줄었고, 최첨단 반도체도 생산하지 못해 경제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는 “(TSMC 공장 건설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20%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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