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22년부터 공사 중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공사 현장. /삼성전자 제공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삼성전자에 64억 달러(약 8조 8640억원)의 반도체 공장 설립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이는 당초 예상됐던 20억~30억 달러보다 세 배 가까운 수준으로 증가한 규모다. 앞서 대만의 TSMC에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66억 달러)과도 맞먹는다. ‘반도체 패권’을 놓고 글로벌 기업들과 최전선에서 경쟁 중인 삼성전자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 정부의 파격적인 보조금 발표에 삼성은 대미(對美) 투자액을 대폭 늘려 반도체 공장 하나를 추가로 건설하고, 첨단 패키징(조립) 시설 및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도 만들겠다고 합의했다. 이와 함께 미 국방부 등 국방·안보 부처들이 필요한 반도체를 삼성이 미국에서 제조해 곧바로 공급하기로 했다. 반도체 생산, 패키징, 기술 개발, 인력 교육 등을 미 본토에서 한꺼번에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삼성은 사상 처음으로 패키징 공정까지 미 본토에서 수행하기로 했다”며 삼성의 투자 계획을 바이든 행정부의 성과로 내세웠다.

◇삼성, TSMC처럼 4나노 이하 미 본토서 생산 결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 5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브리핑을 듣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미 정부는 전날 백악관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내용을 발표하면서, 삼성이 총 4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결정도 공개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원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제정한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기업에 반도체 분야의 보조금과 연구·개발(R&D) 비용 등 총 527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텍사스주(州)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에 이어 테일러에 추가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와 함께 두 공장 모두에서 최첨단 공정인 4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이하 반도체도 생산하기로 했다. 공정이 미세할수록 전력 효율이 높은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양산되는 가장 앞선 반도체는 3나노 제품이다. 당초 삼성은 현재 공사 중인 테일러 공장에서 4나노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했으나 최근 계획을 바꿔 더욱 첨단인 공정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기술을 삼성이 미 본토에 도입하기로 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8일 대만 기업이자 세계 최대 파운더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도 고액 보조금을 미 정부로부터 지급받고, 2나노 제품을 미 본토에서 생산하기로 합의했었다. 반도체 업계에선 자국의 최첨단 기술을 해외 공장에 도입하는 건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왔다. 미 정가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앞세워 해외 기업들의 ‘투자 경쟁’을 유도해 결국 최첨단 기술과 생산 설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건설 중인 TSMC 반도체 공장 공사 현장. /AFP연합뉴스

이와 함께 삼성은 첨단 패키징 시설 및 R&D 센터 등을 텍사스에 건설하기로 미 정부와 합의했다. 이를 두고 미 정부 관계자는 “단순히 반도체만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같은 부지에서 반도체를 최종 조립하게 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또 기존의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공장을 확장해 미 국방부 등 국방·안보 분야와 관련된 부처들로부터 직접 반도체를 ‘맞춤 수주’받고 생산·공급하기로 하기로 했다고 미 정부는 밝혔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4일 사전 브리핑에서 “(이런 합의는) 삼성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본다”며 “또 삼성이 항공·우주, 방위, 자동차 등 미국의 핵심 산업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생산함으로써 미국의 국가 안보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 정부는 (삼성전자의 투자로) 건설 일자리 최소 1만7000개, 제조업 일자리 4500개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을 끝으로 美 ‘첨단 기업’ 보조금 마무리

미 정부는 이날 “삼성전자 보조금 지급 발표는 수십년 동안 아시아에 집중돼 있던 첨단 반도체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 중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앞서 미국은 자국 회사인 인텔에 195억 달러의 파격적인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 8일엔 대만 TSMC에 66억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이런 보조금 지급을 통해 미 정부는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무기로 사실상 전 세계 첨단 기업들의 기술 및 설비를 미 본토로 빨아들이겠다는 ‘반도체 굴기’을 단계별로 수행하는 중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이 세 기업의 보조금 지급 및 이들 회사의 투자 계획 발표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20%를 미국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며 “미국 내 안전한 공급망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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