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후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21일 미시간주 로얄오크에서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방송사 NBC가 21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통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제3 후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막강한 ‘힘’이 확인됐다. 무소속 케네디 주니어의 가세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뒤지던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역전하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바이든·트럼프 캠프 모두 케네디 주니어라는 ‘스포일러(spoiler·방해하는 입후보자)’가 200일도 남지 않은 선거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NN은 “케네디 주니어의 출마가 이번 대선에서 ‘혼돈’을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존 F 케네디(1917~1963)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로버트 F 케네디(1925~1968) 전 법무장관의 아들이다.

그래픽=박상훈

지난 12~16일 전국 단위로 실시한 NBC 조사는 바이든·트럼프의 양자 대결뿐 아니라 다른 군소 후보들까지 포함한 다자 대결도 가정해 조사했다. 양자 대결에선 바이든이 44%, 트럼프가 46%를 기록했는데, 케네디 주니어 등을 포함한 총 5명의 다자 대결 구도에선 바이든 39%, 트럼프 37%로 역전됐다. 케네디 주니어의 지지율이 13%에 달했기 때문이다. 양자 대결에서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의 7%, 트럼프 지지자의 15%가 각각 케네디 주니어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진영의 정치 명문가 출신인 케네디 주니어가 바이든의 표를 더 잠식할 거란 통념에 반하는 결과다. 케네디 주니어가 민주당 출신이긴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전국적인 백신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등 보수 유권자에 소구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선 승부를 좌우할 경합주에서도 케네디 주니어 변수가 현실화하고 있다. 경합주별로 바이든이 유리해지는 곳과 트럼프가 유리한 곳이 엇갈리면서 양대 캠프에 모두 비상이 걸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경합주 7곳에서 진행한 양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노스캐롤라이나 등 6곳은 트럼프가 바이든을 1~6%포인트 차로 앞섰고 위스콘신은 동률이었다. 그런데 다자 대결로 조사하니 위스콘신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에 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시간에서도 바이든이 트럼프에 3%포인트 열세에서 2%포인트 열세로 격차가 줄었다. 미 동부에 있는 위스콘신과 미시간은 대규모 노동자 표가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 바이든·트럼프 모두 집중 공략하고 있는 대표적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 쇠퇴 지역)’이다.

그래픽=박상훈

반면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는 케네디 주니어 가세 후 바이든의 6%포인트 열세가 8%포인트 열세로 확대됐고, 남부 조지아에서도 바이든의 열세가 1%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커졌다. 이는 민주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동부와 트럼프 지지가 강한 남부에서 케네디 주니어 변수로 기존 양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측면 역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케네디 주니어가 경합주별로 적게는 7%에서 많게는 15%까지 얻었지만 그가 과연 완주할지, 본선에 나가면 얼마나 득표할지는 불투명하다.

4월 2일 미국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로이터 뉴스1

바이든 캠프와 트럼프 캠프는 표를 덜 뺏기기 위한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소셜미디어에 “바이든의 상대이지 내 상대가 아니다” “그가 출마한다는 사실이 좋다”며 케네디 주니어의 캠페인을 독려해왔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캠프는 “케네디 주니어는 바이든만큼이나 극단적인 좌파 인사”(브라이언 휴스 보좌관)라고 공개 저격하며 태세를 바꿨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4월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마틴 루터 킹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케네디 패밀리의 박수를 받으며 경례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은 케네디가(家) 다수의 공개 지지 선언을 이끌어냈다. 케네디 주니어의 여동생인 케리 케네디는 지난 18일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마틴 루서 킹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개최한 유세에서 연단에 올라 “케네디가는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날 케네디가에서 최소 15명이 바이든 지지를 표명했다고 AP가 보도했다. 대선 컨트롤 타워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케네디 주니어 찍으면 트럼프 당선’이란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경합주별로 법률팀을 꾸려 케네디 주니어의 후보 등록을 최대한 저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대선은 주별로 수천~수만명의 유권자 서명을 받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 후보 등록을 한다. 케네디 주니어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네바다 등 7주에서 후보 등록 요건을 갖췄고, 50주 전체에 이름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난달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전처인 니콜 섀너핸을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케네디 주니어가 15%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할 경우 오는 9월부터 세 차례 있을 대선 후보 TV 토론에도 바이든·트럼프와 나란히 설 수 있게 된다. 3자 구도로 치러진 대선 TV 토론은 기업인 출신 로스 페로가 무소속 돌풍을 일으킨 1992년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