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연방 차원에서 불법으로 유지하고 있는 ‘마리화나(대마초)’를 저위험 약물로 재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30일 AP 등이 보도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젊은층 및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등을 노린 정책이란 분석이다.

그래픽=백형선

마약 사용·유통 등을 단속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마리화나를 조만간 기존 등급 보다 덜 위험한 약물로 분류하기로 한 내부 결정을 백악관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이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DEA는 그간 마리화나를 남용 가능성이 높고 의료용으로도 허용되지 않아 가장 위험한 마약 등급인 스케쥴 1(Schedule 1)으로 분류해왔다. 그런데 덜 위험한 마약류 등급인 스케쥴 3으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스케쥴 1에 분류된 마약류는 마리화나와 함께 엑스터시, 헤로인 등 중독성이 강한 마약들이다. 최근 미 전역에서 과도 복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펜타닐, 몰핀, 옥시코돈 등이 포함돼 있는 스케쥴 2 보다 더 위험한 마약으로 분류돼 있다. 반면 스케쥴 3의 스테로이드나 테스토스테론, 케타민 등은 처방을 받으면 복용할 수 있는 덜 위험한 마약류로 분류된다. AP는 “다만 스케쥴 3 약물은 여전히 규제 약물”이라며 “(의사 등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여전히 연방 당국으로부터 기소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연방 차원에서 마리화나는 여전히 불법으로 유지된다.

법무부는 DEA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조만간 백악관에 변경안을 제출해야 한다. 백악관 관리예산처(OMB)는 DEA의 개선안을 검토한 뒤 변경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친민주당 성향의 워싱턴포스트(WP)는 DEA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인종 및 형사 사법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온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11월 재선 도전을 앞두고 정치적 승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든과 민주당 진영은 그간 마리화나 사용으로 인해 과도하게 소수 인종과 젊은 층이 처벌을 받아 평생 전과를 안고 살면서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든은 지난 2022년 10월 1970년대 마리화나가 마약류로 분류된 이후 단순 소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6500여명을 사면하기도 했다. 당시 바이든은 “백인과 흑인, 갈색인 사람들은 비슷한 비율로 마리화나를 사용하지만 흑인과 갈색인 사람들은 불균형적인 비율로 체포,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 민주당 진영에선 마리화나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1990년대까지는 대마가 엑스터시 등과 마찬가지로 고위험군 마약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에선 대마가 사람의 정신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치매나, 우울증 등에 효과가 있는 칸나비디올(CBD)란 성분도 대마 안에 포함돼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대마는 니코틴을 함유한 담배나 알코올보다 중독성이 낮다는 주장도 많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주는 1996년 처음으로 마리화나의 의료용 사용을 합법화했다.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3년 연방 차원에서 불법인 마리화나에 대해 각주의 법률을 따르라고 하면서 사실상 마리화나 합법화의 길을 열었다. 그 후 25년간 50주 중 총 24개 주가 마리화나를 기호용으로 사용(recreational use)하는 걸 합법화했다. 또 17개주는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했다. 이렇게 보면 50개주 중 41개 주가 사실상 마리화나를 비범죄화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가을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70%가 합법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며 2000년에 지지한 약 30%의 두 배가 넘는 수치”라고 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DEA의 이번 조치가 마약 복용을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DEA의 전 고위 관리 잭 라일리는 “마리화나는 다른 마약 복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종의 ‘관문 약물’의 역할을 한다”며 “변경안이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