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 단체) 간의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계속 불어나는 가운데 미국 대학가에선 또 다른 전선(戰線)이 달아오르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가자지구를 파괴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반(反)이스라엘 시위와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해 전쟁을 촉발시킨 하마스에 반대하는 반팔레스타인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확산 중이다. 컬럼비아대 등 대학 캠퍼스에 경찰이 잇따라 진입해 1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체포되고 정학·퇴학 처분도 잇따르면서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미국에선 시위의 확산이 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 대학생들은 왜 ‘먼 나라 전쟁’을 위한 시위를 벌이고 무엇을 원할까. 본지 뉴욕·워싱턴 특파원이 현장을 찾아 양측 시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앤디(대학생,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 모임’ 관계자): 반이스라엘
“이스라엘 공격으로 아이들만 1만명 가까이 희생됐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너무나 비극적인 일입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각오해야 할 겁니다. 미국 청년들은 정말로 화가 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내 세금은 한 푼도 줄 수 없습니다. 정부도 숨지만 말고 현장을 보고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우십시오.”
◇제이마트(조지메이슨대 대학생): 반이스라엘
“우리 세대는 불의에 민감합니다.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했던 기성세대와 다릅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없어 정보가 잘 공개되지 않던 시대도 있었죠. 그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얼마나 많은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을까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미국은 이스라엘 지원을 멈춰야 합니다.”
◇레일라(조지워싱턴대 대학생): 반이스라엘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민간인 학살에 더는 미국인들이 낸 세금을 지원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대학 기금을 친이스라엘 기업에 투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시위를 비난하는 말만 하지 말고 이곳을 한번 보십시오. 평화로운 시위에 경찰의 개입을 요청한 (컬럼비아대 등) 학교 당국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메그나드 보크(컬럼비아대 대학원생): 반이스라엘
“대학 측이 뉴욕 경찰에 시위 진압을 요청했다는 사실에 많은 학생이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시위 학생이 계단에서 밀려 넘어지고 다치는 등 일어나선 안 될 일도 벌어졌습니다. 시위대의 요구는 셋입니다. 대학 기금의 투자 내역을 공개하고,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모든 기업의 투자를 중단하고, 징계 처분을 받은 학생 시위대를 사면하라는 것입니다.”
◇세라(컬럼비아대 대학생): 반이스라엘·중립
“이번 시위는 1968년 베트남전 반전 시위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부 발언이 과격할 수도 있지만 저는 시위대가 내세우는 명분(반이스라엘)이 매우 좋은 대의(大義)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제 경찰이 학생들을 체포했을 때 바로 옆 건물에서 이를 목격했습니다. 경찰의 대응이 점점 과격해지는 듯합니다. 많은 학생이 힘들어합니다.”
◇김수산(컬럼비아대 박사 과정): 중립
“시위는 학생들의 자유겠지요. 하지만 지금 학교에선 연구나 공부, 즉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캠퍼스 밖에서 시위가 벌어진다면 그들의 의견을 지지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다만 이 시위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기말고사 준비 등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옳지 않아요. 일부 학생들은 ‘왜 우리가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매슈 메이즐리시(조지워싱턴대 대학원생): 반팔레스타인
“하마스는 미 정부가 지정한 테러 집단입니다. 미국인 80%는 ‘하마스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이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혔고 일부는 목숨까지 잃었는데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구호만 외치면 될까요. 왜 대화가 아니라 (학교 점거 등) 실력 행사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까. 내가 아는 유대인 학생들은 테러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조니(컬럼비아대 대학생): 반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벌이는 일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캠퍼스 건물을 부수고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니 모두 퇴학시켜야 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서, 요즘 학교에 올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늘 키파(유대교 모자)를 쓰고 나올지 고민할 정도였어요. 내 신념이나 종교를 이유로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위험한 자들과 교류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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