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으로서 캠퍼스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이곳이 가장 불편한 곳이 됐어요.”
2일 미국 워싱턴 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에서 친(親)이스라엘 학생 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가 열렸다.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의 이슬람 무장 단체)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위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약 300명이 모여 ‘맞불 집회’를 열었다. 지난해 9월 입학한 신입생 샤니 글래스버그는 “올해에만 기숙사를 두 번이나 옮겼다”며 “우리 문화를 지우려는 그래피티(건물 벽 등에 그리는 그림이나 낙서), 포스터들을 보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흔들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현장에선 “우리가 학비로 1년에 8만달러(약 1억1000만원)를 내는데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피해 다녀야 하냐”는 유대계 학생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왔다는 이스라엘 출신 지나 셰플린은 “우리 조부모는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생존자”라며 “지금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해받았던 그 시절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생물학과 부교수인 리사 슈워츠는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교직원들’이란 교내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현장에서 참여 서명을 독려하던 그는 “학생들이 우리가 정말로 그들의 안전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유대인위원회(AJC) 등 미국의 유대인 권익 보호 단체들도 이번 시위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인근 연구소, 정부 기관 등에서 일하는 유대인들도 집회 소식을 듣고 몰려들었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몸에 두르거나 하마스에 납치·희생된 미국인 인질의 사진을 목에 건 이들은 학생들을 향해 “우리가 같이 있으니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날 시위 현장을 찾은 공화당 소속 릭 스콧 상원의원은 본지에 “내 딸도 이 학교를 졸업했는데 ‘멜팅 포트(문화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폭력에 굴하지 않고 용기를 내준 학생들이 대견하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이어 “반유대주의를 용납하는 대학에는 정부가 한 푼도 쥐여줘선 안 된다”고 했다.
미국 전역에서 경찰의 시위대 강제 해산이 이어지면서 2일까지 2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AP 등은 전했다. 경찰은 대학과 직접 관련 없는 시위대가 폭력 사태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경찰은 컬럼비아대와 뉴욕시립대에서 체포된 282명을 잠정 분석한 결과 47%가 학교와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이날 밝혔다.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학생들이 ‘외부 선동가’들로부터 시위 지침을 받고 있었다”고 했다. 컬럼비아대의 한 강의실에서는 ‘정치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등 중국 마오쩌둥의 혁명 구호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폭력적인 시위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면서도 공화당이 요구해온 주 방위군의 대학 캠퍼스 투입은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