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주둔하며 동맹과 연합해 전쟁을 억제하는 일은 한국만큼이나 미국에도 중요합니다.”
허버트 R. 맥매스터(62)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6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미국인은 주한 미군이 가장 효과적으로 미국과 세계의 안보를 지키는 방법이란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부자 나라인데 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가”라는 최근 트럼프 발언은 본심이라기보다 ‘협상가’처럼 보이려는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미군이 철수했다가) 동북아에 유사시 미군을 재배치하려면 막대한 초기 희생을 감수하는 입장료를 치러야 한다. 한국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며 방위 태세를 갖추는 게 더 합리적이고 저렴한 방식이라고 미국에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군사역사학 박사이자 ‘미 육군의 지성’이라 불리는 맥매스터는 2017년부터 2018년 초까지 트럼프 정부의 두 번째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존 켈리 비서실장, 짐 매티스 국방 장관 등과 함께 트럼프 임기 초반 외교·안보 폭주를 제어하는 ‘방 안의 어른들’ 중 한 명으로 불렸다. 트럼프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비용을 한국에 전액 부담시키려 하자 맥매스터가 이를 만류한 일화가 유명하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야당인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직거래’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맥매스터는 “트럼프가 김정은의 핵 보유 계획에 말려들 가능성은 제로(0)”라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다른 나라 일에 손을 떼자’는 여론이 크다.
“2000년대 글로벌 금융 위기, 중국의 경제적 부상 등을 거치며 나온 오랜 얘기다. 소셜미디어에 의해 증폭된 측면이 있는데 그래도 양당을 보면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정서가 더 강해 보인다.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 처리 과정에도 나타났듯이 많은 미국인은 다른 나라 문제가 (미국이 손 놓고 있다가) 미국으로 오면 결국 엄청나게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 트럼프 측근에게서 주한 미군 감축·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주한 미군 감축은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정부 때부터 나온 얘기다. 미국 입장에선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며 동맹과 장기간에 걸쳐 협력하고, 충분한 규모로 작전을 펼치며 전쟁을 억제하는 게 더 효과적인 안보 대책이다. 미국인은 대부분 미군의 전진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원칙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6·25전쟁이다. 그해 4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는데 6월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지 않나.” (맥매스터의 부친은 6·25전쟁 참전 용사다.)
- 트럼프가 “한국은 부자 나라”라며 방위비 분담 확대를 요구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끊임없이 ‘협상가’처럼 보이려는 하나의 수사(修辭)다. 한국은 방위비를 공정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재집권해 윤석열 대통령과 대화해 보면 가치, 원칙, 경제·안보적 이해 등에 있어 한미의 이해관계가 얼마나 일치(align)하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가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윤석열 대통령과 ‘케미스트리(잘 맞음)’가 더 좋을 수 있다고 본다. 두 사람 모두 정치인 출신이 아니고, 국방과 중국 문제 등에 강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슬프게도 한일 정보 협력이 중단됐다. 지금은 (최근 동맹 강화를 공고히 한) 한·미·일이 지휘·통제를 연계하는 추세를 이어가야 한다. 해양·우주·사이버 등 활동 무대도 다양하다. 한미 간 마찰은 지난 정부 때보다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무얼 해야 하나.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제품 수입,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해 양국이 서로 이익을 보는 관계임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 또 국방비 확대에 그치지 말고, (한국 정부가) 통계를 들고 나와 주한 미군이 미국 입장에서도 효과적이고 더 저렴한 방식이라고 증명해야 한다. ‘트럼프 2기’가 온다면 외교·안보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텐데 이란·러시아·북한 같은 ‘침략자의 축’에 대응하는 문제처럼 한미 간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한미 동맹은 특별한 관계다. 양국의 대통령은 (한미 동맹 파기 등) 모든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군주’가 아니다. 지난달 한국 총선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나.”
-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북한의 핵 문제는 어떻게 풀까.
“김정은은 북한이 핵을 일부 보유한 상태로 유야무야 밀어붙이는 ‘이란식 핵 합의(핵 추가 개발 중단 및 제재 해제)’를 기대하고 있다. 김씨 일가는 늘 (핵 폐기는 하지 않는) 현상을 유지하면서 종국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기를 원해 왔다. 트럼프가 거기에 응할 가능성? 제로(0)에 가깝다고 본다. 지난 트럼프 임기 초반 ‘최대 압박’을 내세웠지만 싱가포르 북·미 회담 이후 (대화의) 동력은 사라졌다. 협상이 타결되려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략적 공감이 중요한데, 김정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의 당위로 ‘자위권’을 말하지만 사실 그건 재래식 무기로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핵 폭주’를 하는 건 본인이 말한 대로 적화 통일을 하겠다는 뜻 아닐까. 북한 비핵화를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다.”
-대만도 민감한 문제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은 대만 문제에 관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대만과 선제적으로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국 견제에 효과적이라고 본다. 한국은 이미 사드 사태 때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겪은 경험이 있다(그는 한국의 경험을 ‘다시 보복이 와도 버틸 수 있다’는 의미로 언급했다). 호주는 물론이고 동유럽의 에스토니아도 버텼는데 (경제 규모가 더 큰) 한국 정도 되는 나라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굴할 수는 없다.”
-(맥매스터의 후임인) 존 볼턴 전 보좌관 등 전직 정부 인사 상당수는 트럼프의 재집권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의 출마가 적절하다고 보나.
“투표는 개인의 자유고 이미 미국인들은 트럼프·바이든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있다. 장군까지 지낸 나 같은 사람이 대중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후보들이 말하고 설득하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허버트 맥매스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17~ 2018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퇴역 미 육군 중장. 타임지는 “21세기 미 육군의 미래 설계자, 탁월한 학구파 전사”라고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을 비판하는 등 쓴소리를 하다 진급에서 여러 차례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1962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에서 베트남전 연구 등으로 군사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걸프전에서 전차 부대를 지휘한 그는 23분 만에 전차 9대로 이라크 전차 28대를 격파했다. 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참전했다. 부친은 6·25 참전 용사다. 그의 최근작 ‘배틀그라운드’는 국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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