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무기와 포탄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피란민 150만명이 모여있는 라파에 대한 지상전을 만류해 온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 중단 방침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대(對)이스라엘 노선을 바꿀 수도 있다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한 셈이다.
바이든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아직 라파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들이 라파로 진격하면 무기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이 아직 ‘레드라인’을 넘은 건 아니라면서도 “나는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시 내각에 그들이 인구 밀집 지역으로 진입하면 우리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바이든은 아이언돔 등 방어용 무기는 계속 이스라엘에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이든은 최근 이스라엘행 무기 선적을 보류한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같은 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 청문회에 나와 “(최근 이스라엘에 대해) 고폭발성 탄약 1회분 배송을 일시 중단(pause)했다”고 설명했다. AP는 이날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 선적이 일시 중단된 폭탄 규모는 2000파운드(약 900㎏) 폭탄 1800개와 500파운드 폭탄 1700개라고 보도했다. 미 정부는 이스라엘이 라파 등 피란민 밀집 지역에서 살상력이 큰 폭탄을 사용하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길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이스라엘 공영 칸 라디오 인터뷰에서 “매우 실망스러운 발언”이라며 반발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군사 지원을 유보하겠다고 위협한 건 처음”이라며 “이는 7개월 이어진 전쟁 중 그가 내놓은 가장 직설적인 위협”이라고 분석했다. CNN은 “그간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속에서 무기 수출을 제한하라는 민주당 의원 등에게 엄청난 압력을 받아왔다”며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임박하면서 대통령의 ‘계산’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미 전역의 대학에서 벌어진 반이스라엘 시위 등 국내에 거세진 반전 여론이 바이든의 강경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날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의 고위 지도자 이자트 알 리시크는 성명에서 앞서 자신들이 수용하겠다고 밝힌 인질 석방 협상안에서 더는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하마스가 수용 방침을 세웠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한 협상안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면 철수’가 포함된 사실상 종전(終戰)안으로, 이스라엘이 주장해온 ‘선(先) 휴전, 후(後) 종전 검토’ 방식과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중재국인 미국, 이집트, 카타르는 지난 7일부터 이집트 카이로에서 가자지구 휴전 및 인질 석방 협상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