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델라웨어로 떠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손에 뉴욕타임스를 들고 있다./로이터

지난달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뉴욕 맨해튼의 한 매체를 방문해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했다. 교통사고로 잃은 첫 번째 아내와 딸 얘기, 암으로 잃은 큰아들, 실의(失意)에 빠졌던 나날 등 대부분 이미 자서전에 담겼던 내용의 재탕이었다.

바이든은 “지금 공화당은 당신 아버지 세대가 알던 공화당이 아니다” “나랑 친한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7명도 나한테 ‘조, 나도 당신 생각이랑 같은데 말을 못 하겠어. 트럼프가 달려들테니까’라고 말한다” “트럼프와 기꺼이 토론을 하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뉴스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방문한 매체는 뉴욕타임스(NYT)가 아니었다. 수십 년 간 유명인사들을 불러다가 도발적이고 저속한 말도 서슴지 않았던 라디오ㆍ온라인 토크쇼 ‘하워드 스턴 쇼’였다. 주(主)청취층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백인 남성들로, 구독 청취자는 미 전역에 3400만 명에 달한다.

라디오 쇼 호스트인 하워드 스턴/페이스북 하워드 스턴 쇼

하워드 스턴은 한때 트럼프와 친했지만, 갈수록 좌로 편향되면서 지금은 방송에서 트럼프를 종종 조롱한다. 트럼프는 그를 “정신 나간 놈(a broken weirdo)”으로 부른다.

바이든은 지난 3월에는 전통적인 잡지인 뉴요커와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갈수록 좌파 성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사이자 ‘기록의 신문’이라고 불리는 뉴욕타임스와는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수 차례 A G 설즈버거 NYT 발행인 겸 회장(43)과 고위 편집 간부들이 백악관에 직접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백악관은 거절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최근 “NYT와 백악관 사이의 갈등과 오해는 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양측 불화의 배경을 소개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바이든 측근들은 “타임스가 건방지고, 자신들이 당연히 (인터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바이든을 부당하게 보도한다”고 비난한다.

반면에, 타임스 기자들은 “백악관은 우리 일을 이해 못한다. 왜 그들이 우리 보도를 보고 좋아해야 하느냐”고 반박한다.

◇NYT가 백악관 관리의 ‘익명(匿名)’ 요청을 거부하자…

수년 간 쌓인 갈등을 터뜨린 것은 작년 3월 26일 일요일자 기사였다. 바이든이 지명한 연방항공청(FAA) 청장 후보가 “충분한 항공 이력이 없다”는 공화당의 반대에 밀려 자진 사퇴한 기사였다.

이 기사를 쓴 NYT 워싱턴 지국의 기자는 토요일 밤 늦게 백악관 공보실에 후보 사퇴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했다. 백악관 대변인보(補)인 압둘라 하산은 “불행하게도 공화당의 근거 없는 공격 탓에, 워싱턴의 임명 절차가 지연됐고 상원에서 불필요한 절차 상 걸림돌에 막혔다”는 입장을 제공했다.

그런데 NYT의 백악관 취재팀이 아니었던 이 기자는 ‘익명’을 전제로 하는 관행을 깨고, 하산의 이름을 기사에 박았다. 에밀리 시몬스 백악관 부(副)대변인은 온라인 기사를 보고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NYT의 워싱턴 지국장에게 하산의 이름을 빼고 ‘익명의 백악관 관리’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

가족과 휴일을 보내던 엘리자베스 부밀러 NYT 지국장은 온라인에 게재된 지 12시간이 지나서 수정해 달라는 요청에 짜증이 났다. 시몬스 부대변인이 타임스의 백악관 취재와 관련해 다른 이슈를 제기하려는 순간에, 부밀러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올리비아 달턴 백악관 수석 부대변인은 부밀러에게 다른 매체들과 마찬가지로 ‘익명의 관리’라는 백악관 소식통 인용 관행을 지켜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부밀러는 답신하지 않았다.

이제 백악관이 ‘응답’할 차례였다. 백악관은 이후 모든 배경 설명ㆍ정보를 제공하는 ‘제1순위(tier one) 언론사 기자들 명단에서 NYT 기자들을 모두 뺐다. 이 조치는 11개월 유효하다가 최근에야 풀렸다.

NYT 워싱턴 지국은 이 ‘보복 조치’가 대통령과 관련된 보도를 통제하려는 백악관의 언론 정책을 드러낸다고 봤다. 미 보수주의자들의 눈에는 ‘진보의 아이콘’인 NYT와 민주당 출신 대통령 사이의 불신과 불만은 이렇게 표면 위로 드러났다.

◇5년 전 바이든의 대선 출마에 냉담했던 NYT

바이든은 50년 간 정치를 하면서 NYT 기자, 편집 간부들과 매우 친했다. 그러나 2019년 초 세 번째 백악관 도전을 발표하고 처음 피자 가게에 모습을 드러내는 비공식 행사에 NYT 기자는 없었다. 다른 두 매체 기자는 귀띔을 받았다. 당시 바이든 공보팀의 해명은 NYT는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바이든에 정통한 취재팀 구축에 투자하지도 않아 자신들도 아는 기자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NYT는 바이든을, 더 진보적이고 젊어진 민주당 유권자들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퇴물’로 간주했다. 민주당 내 후보 경선에서도 바이든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워런과 에이미 클로부샤 두 연방 상원의원을 공개 지지했다.

바이든이 볼 때에는 이런 논조(論調)야말로 ‘진짜’ 유권자들과 동떨어진 세계관이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가 돼서, NYT의 지지를 받는 인터뷰를 하러 NYT 사옥을 방문했을 때, 바이든은 NYT의 경비원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활짝 웃는 기념 사진을 찍었다.

2019년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들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뉴욕시 맨해튼의 본사를 찾은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가 NYT의 경비원 재클린(31)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재클린은 바이든에게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바이든은 "나도 마찬가지"라며 스마트폰 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바이든에겐 바로 이 경비원이 ‘진짜’ 유권자였다. 스스로 미국의 노동계층 출신이라고 자부하는 바이든은 진보 엘리트층이 구독하는 타임스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분노했다.

◇백악관 “민주주의가 위기인데, 트럼프와 동등하게 대우하다니” 분노

바이든 공보팀은 ‘미국 민주주의가 사느냐, 죽느냐’는 순간이라고 보는 시점에, NYT가 종종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는 중립성을 띠려 한다고 불만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이 딴판인데도, NYT가 중립적인 보도로 이런 상이점을 흐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NYT가 트럼프가 나토(NATO) 국가들에게 국방비 증가를 요구하면서 불응 시 “러시아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겠다”고 말한 것보다, 바이든의 81세 고령(高齡)과 낮은 지지율을 부각해 보도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초에도 NYT는 “2020년 대선 때 바이든을 찍은 유권자의 과반수는 ‘그가 효율적으로 일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작년까지 백악관 공보 부(副)국장이었던 케이트 버너는 “민주당은 자유 언론이 우리 민주주의를 지탱해가는 중요성을 믿고 NYT가 제4부(府)로서 수 세대에 걸쳐 중요한 표준이 돼 왔다고 생각하는데, NYT는 종종 그 중요한 책임을 수행하는 데서 실패했다”고 소셜미디어에서 밝혔다.

◇NYT “백악관이 왜 우리 보도를 좋아해야 하나?”

NYT 기자들 생각은 물론 다르다. 부밀러 워싱턴 지국장은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force)이지, 바이든 백악관의 주요 요소가 아니다”고 폴리티코에 반박했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는 신문사의 특권이다. 어느 백악관도 우리 보도를 좋아한 적이 없지만, 나는 왜 그들이 좋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일은 권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비판하면, 취재원 끊겨

NYT 기자들은 바이든이나 백악관이 싫어하는 기사를 쓰면, 종종 백악관과 행정부의 취재원으로부터 단절되는 경험을 겪었다. NYT의 칼럼니스트인 머린 다우드는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신랄한 칼럼을 쓴 뒤, 백악관 관리들과 연결이 끊겼다고 한다.

NYT 기자들은 트럼프 시대에 미국의 전통적인 주류(主流) 언론사들이 겪었던 일들이 결국 민주당의 언론관도 왜곡시켰다고 해석한다.

NYT의 백악관 취재팀 수석기자인 피터 베이커는 폴리티코에 “역대 백악관은 모두 우리 보도에 대해 불평했다. 우리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트럼프와의 관계 때문에, NYT가 이제 바이든 편을 들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NYT 기자들은 백악관의 이런 불만과 좌절이 보도 방향을 컨트롤 해보려는 ‘잘못된 시도’라고 말한다. 또 바이든 백악관이 원하듯이 트럼프를 더 강하게 비판하면, 트럼프보다도 NYT의 명성과 이 신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NYT 발행인 “81세의 대통령직 수행 능력 증명하려면, 우리와 인터뷰해야”

그러나 NYT가 바이든과의 인터뷰를 간절하게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NYT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래 미국의 모든 대통령과 긴 인터뷰를 했다.

작년 5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뉴욕의 NYT 본사를 방문했을 때에도, 설즈버거 회장은 수 차례 “왜 대통령이 우리와 인터뷰를 하지 않느냐”고 계속 물었다. 해리스는 나중에 측근에게 ‘대통령 인터뷰’ 건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설즈버거는 사석에서도 편집간부들과 백악관 고위 관리들에게 종종 “뉴욕타임스 같은 신문이랑 인터뷰해야만 81세 된 바이든이 여전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한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도 대통령 재직 중인 2019년 3월 자신이 “가짜 뉴스”라고 욕하는 뉴욕타임스와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설즈버거는 트럼프가 할 수 있다면, 바이든은 왜 (인터뷰를) 못 하느냐고 말한다.

이와 관련, 한 NYT 기자는 폴리티코에 “설즈버거 자신이 바이든의 인터뷰 거절에 화가 나서, 바이든의 나이에 대한 집요한 보도를 은밀히 장려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대통령 인터뷰가 NYT의 당연한 권리라고?

NYT는 대통령 인터뷰가 자사의 ‘태생적(胎生的)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바이든의 백악관은 동의하지 않는다.

백악관 공보팀은 오히려 소셜미디어 X에서 뉴욕타임스의 ‘편향적인’ 바이든 비판 기사와 트럼프에 대한 ‘유화적’ 기사만을 골라 소개하는 소셜미디어 X의 피치볼트(Pitchbolt) 팀과 오히려 정보를 공유한다. 바이든은 NYT가 들으라는 듯이 “나는 그 사람 맘에 들어. 그 사람이랑 인터뷰해야겠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지난 1월 초 바이든 재선(再選) 캠프에선 미국 최대 언론사 기자들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캠프 본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NYTㆍ워싱턴포스트ㆍ월스트리트저널ㆍ폭스뉴스ㆍ로이터ㆍ블룸버그 기자들이 초대됐다. 백악관 측은 나중에 이 간담회가 “NYT를 제외하고는, 만남이 구체적이고 생산적이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양측의 이런 불화(不和)와 쌓인 오해를 고려할 때, 바이든이 NYT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 바이든 공보팀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를 넘어, 새로운 매체를 활용할 필요도 있다. 바이든은 인쇄매체 중에선 AP 통신과 잡지 뉴요커와만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진보 매체인 뉴리퍼블릭은 “바이든이 두번째 임기를 꿈꾸면서 NYT를 피해선 안 된다.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대통령직에 적합한지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