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민자와 드리머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한국계와 필리핀계 미국인의 차이를 구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14일 오후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센터. 아태의회연구재단(APAICS) 30주년 만찬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자 청중에 있는 1500여명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1994년 설립된 APAICS는 초당파 비영리단체로 아시아·태평양 미국인들의 권익 신장을 도모하고 정치인, 리더들의 네트워킹을 촉진하는 데 앞장서온 단체다. 11월 대선에서 아시아계 유권자 그룹의 지지가 필요한 바이든은 15분 연설에서 “여러분이 미국의 희망” “미국은 드리머의 나라”라고 말하며 이들의 표심에 호소했다.
이날 행사에는 바이든 뿐만 아니라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한국계로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앤디 김 하원의원, 의회 내 대표적 지한파인 아미 베라 하원의원, 아시아계인 주디 추·그레이스 멍 하원의원 등이 총출동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전통적으로 바이든에 투표했던 흑인·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가 신통치 않아 바이든 입장에선 아시아계의 ‘분발’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전날 APAICS 주최 다른 행사에 참석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욕설까지 곁들여 가며 아시아계가 “문을 박차고 나오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바이든은 이날 연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각의 일원이자 아시아계인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호명하며 청중의 박수를 유도했다. 불법 체류자가 된 후 추방 유예를 받은 사람을 뜻하는 이른바 ‘다카(DACA)’가 오바마 케어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정부 기관이 일부 사회·복지 정보를 수집할 때 인종도 구분할 수 있게 한 것 등을 치적으로 내세웠다. 바이든이 “한국계 미국인과 필리핀계 미국인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각 커뮤니티의 필요에 귀 기울일 수 있겠느냐”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바이든은 이날 발언의 상당 부분을 경쟁자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자들을 ‘더러운 피’라 표현한 것을 언급하며 “왜 강간자나 살인자로 묘사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루저(loser)”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이 나라의 역사를 다 지워버리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민자와 드리머의 나라고, 다양성이 미국의 힘이다” “기후 변화, 총기 폭력 등으로 나라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여러분에게서 희망을 본다” “우리는 미국 그 자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현장에는 6·25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보훈 활동을 벌여온 한나 킴 전 보건복지부 부차관보, 샘 조 시애틀 항만청 커미셔너 등을 비롯해 각 정부 부처와 의회, 싱크탱크 등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또 워싱턴DC에 있는 방송국 WRC-TV의 저녁 뉴스 앵커인 한국계 은 양(Eun Yang)씨가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아 바이든을 소개했다. 바이든에 이어 민주당 하원 1인자인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가 연설을 했는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