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20일 미국 워싱턴DC 허드슨연구소가 주최한 라운드테이블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진 변호사.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0년 북한의 최하층인 ‘꽃제비’ 출신으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던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임기 종료를 열흘 앞두고 미국 워싱턴DC를 찾았다. 지 의원은 20일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가 주최한 라운드테이블에서 “평양에서 태어나고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아닌 밑바닥의 삶이어도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와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탈북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이 큰 의미가 있다”며 “예전보다 탈북민들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지 의원은 북한 인권 활동가로 있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초대돼 목발을 흔든 것이 미 조야(朝野)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 의원의 임기 시작 직후인 2020년 5월 ‘김정은 사망설’을 제기했다 사과하는 등 의정 활동 초반은 좌충우돌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후 탈북민 정착 지원과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 등에 집중했는데, 가장 보람이 있는 성과로 올해 3월 서울 종로구에 개관한 북한인권박물관 예산을 확보한 일을 꼽았다. 생생한 증언과 기록물로 북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지 의원은 “워싱턴에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박물관이 있는데 미국이나 국제사회 유력인사들이 방한하면 박물관을 찾아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지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탈북민 정착 지원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 의원을 북한을 ‘표류를 넘어 좌초하는 목선’으로 표현하며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탈북이란 뒷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회가 없고 철저히 차단된다”고 했다. “북한 당국이 국경에 지뢰를 매설할 정도로 통제가 심하다” “최근 넘어온 탈북민 얘기를 들어보면 살인 사건 등 강력 범죄가 빈번하고 영양 실조에 따른 아동 장애 문제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어 김정은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선대 유훈을 포기한 것을 언급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2500만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 해야 희망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북한 인권 활동가로 있던 2018년 1월 미국 의회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목발을 올려 기립 박수를 받고 있다. /조선일보DB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선 북한 인권 문제, 나아가 북한 문제에 대한 워싱턴 조야(朝野)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한국보다 한참 앞서 2004년 의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은 2022년 효력이 종료된 뒤 재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리비아 이노스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에 대한 ‘잔학 행위 판정(Atrocity Determination)’을 통해 꺼져가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모멘텀을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는 국무부의 정책 도구 중 하나로 인권 탄압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와 상황, 피해 집단 등을 미국 정부가 공식 지정하는 것이다. 이 자체는 선언적이지만 이를 근거로 당국이 조사·제재를 집행하고 의회 입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미 하원 관계자는 “민주·공화 양당에서 ‘미국이 너무 많은 일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하는 고립주의 경향이 심화되면서 대북 정책에 구조적 제약들이 더 많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또 “북한 문제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고, 상당수 의원·보좌관들이 피상적인 이해만 갖고 있는 수준”이라며 “북한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숙고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엔 헤리티지재단, 브루킹스연구소, 국제공화연구소(IRI) 관계자 등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