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대사가 22일 미국 워싱턴DC 허드슨연구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대결을 펼쳤다 지난 3월 중도 하차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22일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헤일리는 이날 본인이 ‘월터 스턴 석좌’로 새 둥지를 튼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설 뒤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가 백악관에 적합하냐’는 질문에 답하며 이같이 말했다. 헤일리는 “동맹과 힘을 합쳐 적국에 책임을 묻는 일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불완전하지만 바이든은 재앙적”이라고도 했다. 그가 트럼프에 대한 투표 의향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경선 하차 뒤 처음이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의 유일한 대항마였던 헤일리는 대의원 확보 경쟁에서 초반부터 격차가 크게 벌어지자 지난 3월 자신이 주지사를 지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트럼프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나는 항상 공화당 후보를 지지해왔지만 트럼프가 당의 지지를 얻는 것은 그 자신에게 달려있다”며 명확한 지지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이후 진행된 경선에서 헤일리는 중도층의 사표(死票)를 얻으며 반(反)트럼프 진영의 구심점으로 인식됐다. 최근 치른 인디애나·메릴랜드주 경선에서는 20%가 넘는 득표율도 기록했을 정도다.

헤일리의 이날 발언은 트럼프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헤일리는 트럼프에게 투표 의향이 있다는 발언만 했을 뿐 본격적인 지원 의사는 내비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나에게 투표하고 나를 계속 지지하는 수백만 명에게 다가가야 하며, 그들이 그저 함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에게 투표는 하겠지만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각에선 헤일리가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로 깜짝 발탁될 가능성을 거론하지만, 트럼프 본인이 여러 차례 선을 그은 바 있다.

트럼프에게 거부감을 가진 중도 보수 유권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공략 대상이다. 바이든 캠프는 중도 확장을 하겠다며 트럼프에게 거부감이 큰 헤일리 지지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광고를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헤일리는 이날 이날 바이든 행정부에도 각을 세웠다. 그는 3년 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언급하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줘 한국·일본에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우리가 후퇴하면 중국·러시아에 더 많은 피를 흘려도 좋다는 ‘그린 라이트’를 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발을 빼면 대만을 침공하고 이란·러시아와 같은 ‘악의 축’ 국가들과 협력해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라며 “동맹이 우리를 대신해 적국과 싸우고 있고, 세계는 미국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고 했다.

헤일리는 현 상황을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0년대 말에 비유하며 “세계 도처의 과제에 지금 정면으로 대처해야 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을 수 있다”며 “초등학교 4학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논리인데 정작 우리 당에서 4선씩이나 했다는 의원들은 알아듣지 못한다”고 했다. 헤일리는 곧 이스라엘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는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지도부 모두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과 관련, “여성들이 강간당했고 미국인을 포함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이를 동일 선상에서 다루겠다는 건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날 현장에는 헤일리의 배우자이자 주 방위군 소속 군인으로 아프리카 지부티에 파병됐다 최근 복귀한 마이클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