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모자 쓴 라이칭더 총통 - 라이칭더(오른쪽) 대만 총통이 27일 타이베이에서 마이클 매콜(공화당)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선물받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대(對)중국 강경파로 알려진 매콜 위원장은 미국 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했다. /AP 연합뉴스

반중(反中) 기조를 앞세운 라이칭더 대만 총통(대통령 격)이 지난 20일 취임하며 중국과 대만 간 충돌 위험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워싱턴 DC의 전문가들이 중국이 전쟁 없이도 대만을 ‘접수’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저강도 위협을 반복함으로써 대만 내 ‘위험한 반중보단 안전한 친중이 낫다’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미국·대만 관계 악화를 유도하는 전략을 통해 대만을 실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도출했다.

미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기업연구소(AEI)와 군사 전략 전문인 미국전쟁연구소(ISW)는 최근 합동으로 발표한 115쪽짜리 보고서를 통해 이런 분석을 발표했다. AEI와 ISW는 지난 1년간 중국 당국의 입장에서 ‘워 게임(전쟁 시뮬레이션)’ 형태의 가상 시나리오를 전개한 결과, 이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본지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최종 목표는 대만과 이른바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평화 양안(兩岸·대만과 중국)위원회’ 등 정치 기구를 구성해 사실상 대만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중국이 ‘전쟁 없는 대만 지배’ 전략을 4단계로 나누어 진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라이칭더가 총통에 취임한 2024년 5월부터 차기 총통 선거가 있는 2028년까지, 중국이 대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수행할 가상 시나리오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단계는 내년 말까지다. 중국이 대만 주변의 항공·선박 경로 폐쇄, 해저 케이블 절단, 전자전(戰) 등을 통해 대만 사회의 불안감을 조성한다. 보고서는 “(중국의 방해로) 깨끗한 수도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에너지가 갑자기 끊겨 대만 사회는 동요하게 되고 정부 지지율은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라이칭더의 반중 노선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 대만 거주자들의 위험을 키운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픽=정인성

2단계는 미국·대만 관계의 교란이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 분쟁 과정에서 최근 대만과 더 가까이 밀착 중인데, 대만 주변의 혼란이 중국이 아닌 미국 때문이라는 여론을 퍼뜨려 대만 내 반미 정서를 증폭시키겠다는 목적이다. 미국에선 미 국민 1억7000만명이 사용하는, 중국 기업 소유 동영상 공유 앱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동원해 ‘타국 갈등에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외교 기조인 고립주의 분위기를 확대시킬 전망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고립주의는 오는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우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최우선)’ 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

3단계는 해상 봉쇄 등 군사 위협 강도를 점차 늘리는 동시에 대만 내부에 ‘중국과의 화친을 통한 평화’ 여론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과정에 한일 등 주변국이 대만 이슈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북한의 핵실험 및 국지 도발 등을 유도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만과 미국 등에서 “대만은 중국과 평화롭게 지내는 편이 낫다”는 여론이 굳어지면, 마지막 4단계를 통해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평화위원회를 구성해 ‘지배 체제’를 완성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중국은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 후 한때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보장한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자유 언론 탄압 등을 통해 홍콩의 자유민주주의를 제거했는데, 대만 또한 비슷한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AEI(미국기업연구소)와 전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의 일부분. 2027년 1월부터 5월까지 중국이 대만을 향해 쓸 수 있는 각종 ‘억압 전략’을 서술해 놓은 것으로, 대만 기업 및 정부 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 강화, 대만 지도부 피신 등 허위 소문 확대, 중국의 선전 매체를 통한 ‘평화론’ 확산, 북한의 도발 유도 등이 가능한 시나리오로 소개됐다. /AEI, ISW

보고서는 “미국 및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대만 내 이른바 ‘분리주의자’들을 좌절시키고 ‘양안의 평화’라는 명목으로 중국의 요구에 100% 응할 (친중) 정치인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게 중국의 계획”이라고 했다. 중국의 이 같은 ‘대만 복속’ 시나리오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미 연방의회 관계자는 “중국과 북한·러시아 등은 하나같이 도발을 계속하면서도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고 있다”며 “중국 등이 벌이고 있는 심리·여론전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 저자 중 한 명인 댄 블루먼솔 AEI 선임연구원은 최근 이 보고서 결과 등을 토대로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위원회 존 물레나르(공화당) 위원장과 라자 크리슈나무디(민주당) 간사 등과 함께 미국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알려졌다. 보고서는 “미 정부가 중국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에만 집중해 준비할 경우 중국이 이미 은밀히 추진 중인 ‘하이브리드(고·저강도 혼합) 강압 전략’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게임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는 군사 훈련 방법. 실제 정세와 병력 등을 최대한 반영해 전쟁이나 분쟁 상황에서 일어날 일을 모의 실험하는 방식이다. 전쟁 지휘관과 정치권의 의사 결정자들이 충돌 발생 시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돕거나 분쟁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최근엔 컴퓨터를 많이 활용한다. 과거엔 종종 분쟁지의 지도를 펴놓고 했다고 해서 ‘도상(圖上)훈련’이라고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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