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Roger Wicker) 의원이 29일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위해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고, 한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식으로 핵무기를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위커 의원은 이날 국방 예산 550억 달러(약 75조원) 증액을 주장하며 발표한 국방 투자 계획 ‘힘을 통한 평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위커 의원은 미시시피주를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의회 내 외교·안보 매파로 분류된다.
위커 의원은 “김정은은 매년 계속해서 미국 본토와 인도·태평양 동맹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더 만들고 있다”며 “당장 외교 해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에서 억제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것은 정기적인 한미 군사훈련을 통해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한반도에 미군이 지속적으로 주둔하며, 인도·태평양에서 핵 공유 협정과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같이 한반도에서 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옵션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위커 의원은 미국이 나토 동맹국들과 체결한 ‘핵 책임 분담 합의’를 언급하며 “한국·일본·호주가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이들 국가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나토식 핵공유’의 특징은 미국이 작전 기획과 의사 결정을 담당하고, 동맹국들은 핵무기 배치 시설을 제공해 투발 임무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다. 그동안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유럽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도 나토와 같은 미국과 동맹국들 간 ‘핵기획그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또 전술핵의 경우 1990년대 초 미국의 철수 선언이 있기 전까지 수백기가 한반도에서 운용된 적이 있다. 한미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는 지난해 발표한 ‘한국에 대한 핵보장 강화 방안’ 보고서에서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국 배치 등 단계적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 동결을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폴리티코는 “위커 의원이 상원 군사위가 다음달 국방수권법안(NDAA)을 심사할 때 자신의 제안을 개정안 형태로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NDAA는 미국의 한해 국방 정책 방향과 예산안을 총괄하는 연례 법안으로, 상·하원이 단일안을 만드는 조율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최종 서명한다. 하원 군사위가 지난 28일 전문(全文)을 공개했고, 상원 군사위도 다음달 전체회의에서 표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커 의원은 총 550억 달러 증액을 요구했는데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우리 전투기 편대는 위험할 정도로 작고, 군사 시설은 노후화되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적들은 군대를 증강하고, 더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했다. 향후 5~7년 동안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9%에서 5%까지 확대, 단기간의 집중 투자를 통해 또 다른 ‘세계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만 위커 의원의 이런 제안이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 추인을 받아 내년도 NDAA에 반영되고,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에 의해 채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워싱턴선언에 따라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 를 중심으로 한미 간 확장억제(핵우산) 강화,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을 통한 대북 억지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기본 기조다. 반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인사들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 조금 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