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1일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성추문 입막음 사건에서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리면서 범죄자 신분으로 백악관 재입성에 도전하게 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분노를 동력 삼아 세 결집에 본격 나서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유죄 평결 하루 뒤인 지난달 31일 오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강성 발언을 쏟아냈다. 법정 밖에서 소송 내용을 언급하지 못하도록하는 ‘함구령’이 걸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진행해온 후안 머천 판사,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유죄 평결에 대해 “악마 같은 판사와 두 단어도 이어서 말하지 못하는 바이든의 작품이었다”며 “항소하고 기꺼이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 달 11일 형량을 선고할 머천 판사를 겨냥해선 “이토록 모순되는 사람은 없었다”며 “천사처럼 보이지만 악마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상 어떤 유력한 대선 후보도 이렇게 재갈이 물린 적은 없다”며 “누군가는 이 싸움을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 이런 싸움을 하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공화당 내 친트럼프 인사들도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바이든 정부의 ‘사법제도 무기화’가 낳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날”이라고 했다. 트럼프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민주당이 미국을 제3세계 거지 소굴 정도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11월 5일 대선이 우리가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비벡 라마스와미는 “머천 판사는 트럼프를 무너뜨리기로 작정한 정치인이고 그의 딸은 민주당 첩보원”이라며 “역풍이 불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트럼프 진영 인사들의 잇단 강성 발언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자들의 분노를 이끌어내 유죄 평결에 따른 중도층 이탈 등 후폭풍을 신속하게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 지지자들의 분노 결집은 후원금 모금에서는 효과를 거두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유죄 판결 이후 24시간 동안 5280만달러(약 730억원)의 후원금이 모금됐다”고 했다. 트럼프 캠프가 지난해 하반기 온라인으로 모금한 5800만달러를 거의 하루 만에 쓸어 담은 것이다. 캠프 측은 “기부자의 약 30%가 처음 후원금을 낸 새로운 기부자인데 이런 흐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보수 진영 논객 터커 칼슨은 “트럼프가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그가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했다.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유죄 평결에 항의하는 뜻으로 성조기를 뒤집어 게양하고 이를 인증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도 워싱턴DC 본부에 거꾸로 된 성조기를 게양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뒤집힌 성조기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의 승리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앞세웠던 상징이다. 일부 지지자들은 만장일치 유죄 평결은 내린 배심원 신상털기를 시도하고 있다. 트럼프 극렬 지지자 사이트에서 배심원단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 집 주소, 기타 개인 정보 등이 공유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는 지지자들의 분노를 동력 삼아 트럼프가 기소된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정치적 의도’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시 차기 법무장관으로 거론되는 마이크 데이비스 변호사는 “조지아·플로리다주의 공화당 검사들이 민주당의 선거 개입을 조사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는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와 대통령 재임 시절 기밀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각각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법원과 플로리다주 연방지법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